[더팩트ㅣ원주=이철영·신진환·서다빈 기자]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지난 22일 그와 만남은 2022년 12월 28일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반가움의 표현이겠지만 밝은 미소는 3년 전과 180도 달라졌다. 서울을 떠나 고향 원주로 돌아와 북카페 '더 멀리'를 운영 중인 박지현(30)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확실히 밝아져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박 전 위원장의 모습은 중앙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보다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전세 계약이 끝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원주로 가버릴까? 지친 것도 있었고‥. 제가 또 서울 중심주의를 타파해야 된다고 말했는데, 서울에 사는 게 맞나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고민 끝에 조금은 무작정 온 것 같아요."
그는 이제 자영업자일까, 아니면 정치인일까. 박 전 위원장의 정체성이 궁금했다. 여의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투잡도 많이 하니까. 어쨌든 직업 정치인은 조금 다르지만, 제가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카페 사장으로서의 그 뭐랄까요, 정체성이 더 강하기는 합니다."(웃음)
어느덧 카페를 운영한 지 한 달째. 기대했던 수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자영업자의 고충을 토로한 그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영입한 인재이자 2022년 3월 26살 나이로 공동비대위원장에 오르며 전국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제는 정치권 밖에서 값진 청춘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는 그는 삶이 그렇듯, 정치든 경영이든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영업자의 고충을 몸소 깨닫는 중이다.
박 전 위원장은 "현재 가장 많이 생각은 '매출'이다. 하루 매출을 생각하다 보니 이제 자영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 체감을 하고 있다"라며 "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컸었나라는 생각도 더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독서 모임과 여성 이슈와 관련한 책을 보고 소통하는 여성 소모임, 청년 자영업자들의 봉사활동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뿌리 조직을 다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실제 박 전 위원장은 2028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냐는 물음에 "이제 준비해야죠"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치로 이어졌다.
스스로 단단해졌다고 자평했다. 여의도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박 전 위원장이지만, "싸가지가 없다" "새파랗게 어린애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유도 없이.
"제가 서울에 살 때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공황장애로 오랫동안 약을 먹었다가, 어렵지만 약을 끊었어요. 오랜만에 인터넷 댓글 중 악플을 봐도 '아직도 나에게 관심이 많네, 내가 많이 크고 단단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여성과 청년에 대한 혐오적인 악플은 없어지는 게 맞아요. 그동안은 너무나 개인의 멘털(정신) 관리로만 치부해 왔던 것 같아요.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해요."
민주당은 2022년 1월 정치 신인에게 중책을 맡겼다. 20대 대선 때 박 전 위원장을 당 선대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위 위원장으로 앉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 사건'을 추적·보도한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 패배 이후 꾸려진 비대위에도 합류했다. 당내 주류인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정치인 용퇴론과 팬덤 정치와 결별 등 당 쇄신안을 내놓자 엄청난 공세에 시달렸다. 그는 "여의도 정치 자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 굴처럼 여겨졌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30대가 된 박 전 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 생각하면 '진짜 어린애한테 너무했네'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그때의 고통은 현재에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그대로라고 짚었다.
"그때와 지금의 민주당은 달라진 게 없어요. 지금도 민주당에 686세대가 대부분이잖아요. 저는 민주당이 재창당해야 한다고 봐요. 민주당이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데, 사실 말뿐인 구호가 됐거든요. 청년들과 간담회도 하지만 청년들에게 어떤 권한을 주고 진짜 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주지도 않고요. 진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많이 느껴요. 손님 중에서도 젊은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줄 세우기 정치를 비판하면서 민주당을 향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공천제도가 없는 미국과 달리 줄을 잘 서야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너무 강해요. 제가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느꼈어요.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 옆에 '레드팀'이 없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정부나 민주당은 레드팀을 반대편의 악으로 규정해 버려요. 더 잘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말들을 포용하지 못해요. 그게 가장 문제예요."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하셨지만, 공소취소에 대해 더 빨리 견해를 밝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론이) 안 좋을 수밖에 없거든요. 대통령이 빠르게 치고 나가도록 주변에서 얘기해 준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민주당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서도 조금 밀려다니다 보니 대통령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요. 대통령께서 애정이 섞인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셨으면 좋겠어요. 고깝게 듣지 마시고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재명 정부 2기 내각 인사 파동으로 흘렀다. 박 전 위원장은 인재풀이 없어 장관 후보자들이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안타깝지만 분명히 "잘못된 인선"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같은 여성 청년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장관·의원 겸직 논란 등에 휩싸여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직에서 사퇴한 것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위성 정당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재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 정당이 되기에 봐달라면서 장관과 의원을 다 하겠다는 선택은 청년이 보기에 공정하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물론 그에 대해 비판받는 것도 맞습니다. 다만, 용 의원이 욕심이 많은 것일 뿐 청년과 여성 모두가 욕심이 많은 건 아닙니다."
부동산 문제와 인사 파동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조기 레임덕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 30%대 수준으로 일부 국정 동력의 상실이 우려되는 정도다. 박 전 위원장도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이 15% 나온 것을 보고 진짜 놀랐어요"라면서 옅은 한숨을 쉬었다.
"청년은 애초 국민의힘을 차마 지지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어줬던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민주당은 원래 몫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미칠 노릇인 거예요. 명문대 나와서 돈 잘 버는 국회의원이 월세 상승, 전세 사기, 여성의 임금 차별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청년을 정책으로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해요. 청년은 민주당이 보여줄 미래를 기대하지 않아요."
'당이나 청와대에서 손을 내민다면'이라고 묻자 "저는 왜 안 부르시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태연자약했다. 박 전 위원장의 현재는 성숙과 성장의 시기다. 자기만의 소중하고 특별한 공간에서 그의 꿈이 영글고 있다.
"물론 힘들겠지만 그래도 시민들께서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요. 지금도 저는 어쨌든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동체 안에서 사람과 만나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고 타협하는 것들이 사실 정치의 일부잖아요. 저는 우리 정치가 조금 더 성숙하게 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든 편하게 놀러 오셨으면 해요. 그리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