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소영 기자] 한미 관계가 중대 분기점을 맞고 있다. 대미투자 이행부터 안보 분야 역할 확대,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까지 한미가 조율해야 할 현안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국제 정치 전문가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더팩트>와 만나 "(한미 관계가) 처음에는 Virtuous Cycle(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Vicious Cycle(악순환)의 구조가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전후 미국 조야에 경계감이 있었지만, 취임 이후 한미 관계가 빠르게 안정됐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이 정치인 시절 중국·대만 문제와 한미일 안보협력 등에 대해 내놓은 발언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을 주시하는 시각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같은 우려가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고 봤다.
김 교수는 "(첫 한미 정상회담) 출발이 굉장히 좋았다"며 당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제안한 점과 이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지났고 안미경미(안보는 미국, 경제도 미국)의 시대가 왔다'고 밝힌 점을 거론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미투자 이행 과정에서 한미 관계의 선순환 구조가 흔들렸다고 짚었다. 그는 "대미투자가 연초에 트리거(기폭제)가 됐다"며 미국이 투자 이행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내 법적 절차와 환율 문제 등을 이유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Show me the money'(돈을 보여달라)"라며 "(대미투자가) 치적이 될 수 있는데 한국이 후속 조치를 밟지 않았다고 인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미투자 이행 지연을 둘러싼 불만에 일명 '쿠팡 사태'까지 겹치면서 미국 내 부정적 인식이 확대됐다고 봤다. 김 교수는 "(대미투자 이행이 더딘 상황에서) 쿠팡 사태가 터졌고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화한 조치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미국 조야에서도 한국의 대미 인식을 악화시킨 사건이 됐다"고 말했다.
대미투자 협의는 최근 일부 진전을 보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프로젝트 1건과 추진 계획을 마련한 프로젝트 2건을 보고했다. 최종 추진이 확정된 1호 사업은 텍사스 엔시날 지역에 총 설비용량 6.3기가와트(GW)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김 교수는 한미 간 경제 현안이 동맹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에 '대체 불가능한 동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국가'를 밀어준다. 그의 특징은 힘과 승자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동맹이 스스로 자기 국방을 책임지고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동맹을 원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반도체와 조선,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이 대체 불가능한 분야라고 꼽았다. 김 교수는 "한국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반도체나 조선업, 원자력 협력 등 새로 짜이는 공급망에서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안보 분야에서도 한국의 역할과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핵잠의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안보 기여를 확대한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핵잠은 핵무기를 만들려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이 원하는 한국의 안보 기여를 증진하는 차원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한국의 역할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충돌 이후 동맹국에 역할 확대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기여 방안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미국 혼자 벌이고 있는 전쟁이라는 모습에서 핵심 동맹 국가들이 참여해주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호르무즈에 병력을 보낸다고 해서 한미 관계의 현안이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파병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꼬인 한미 관계의 실타래가 하나 풀려 정상적인 관계로 복원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한미 간 현안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도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북미대화 재개에 대비한 한국의 역할 설정도 과제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진심으로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에 대한 어떤 동경이 있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김 위원장과 만나면 좋은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의 외교정책 유산을 만들고 싶어 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과 가깝게 지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높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대북제재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미국 조야에서는 이를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을 전략의 결과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전략적인 사람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과 별개로 동맹국에 많은 부담과 역할을 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는 조금 더 세련된 미국 우선주의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미국 자체를 버리기보다는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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