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쏟아지는 폭염 법안…더위 끝나니 또 계류?


상임위 방치 속, 국회 청소 노동자 '찜통 노동'
"기온 떨어지면 동력 잃는 구조 반복"
"선심성 대책에 그쳐…실효 대책 마련"

폭염이 상시화된 구조적 재난임에도 관련 법안은 여름 한철 반짝 관심을 끌었다가 정국 우선순위에서 밀려 방치되는 패턴이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은 극한 폭염이 한풀 꺾인 지난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환승센터에서 한 시민이 휴대용선풍기를 목에 건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김성렬 기자

[더팩트ㅣ국회=김수민·서다빈 기자] 여름철마다 쏟아지던 국회의 '폭염 민생 대책'이 기온이 꺾이자마자 동력을 잃는 모양새다.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폭염 대책은 매년 여름에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계절성 입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이 연이어 발의한 폭염 관련 민생 법안 수십 건이 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거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골 계류 안건'은 노동 현장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다. 체감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사업주의 정기 휴식 제공과 냉방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폭염 등 극단적 기상 조건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 등은 폭염을 작업중지권 행사 범위에 포함하고 노동자의 대피권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현행 제도는 폭염 시 휴식 등 노동자 보호조치를 두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폭염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경영계의 부담 우려와 다른 현안에 밀리면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폭염 기간 전기요금 부담을 덜기 위한 법안들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폭염 등 자연재난 특보가 장기화할 경우 취약계층, 노인복지시설, 전통시장 상인, 농축산업 종사자의 전기요금을 감면하거나 누진제 적용을 면제하고 국가가 그 손실을 보전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주민·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취약계층의 여름철 냉방 전기요금 지원 근거를 담은 개정안을 내놨지만, 한국전력의 손실 보전과 재원 마련 방안 등을 둘러싼 논의가 진전되지 않으면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특히 국회 정식 업무 시작 전 출근하는 새벽 미화 노동자들은 냉방기조차 켜지지 않은 찜통 복도에서 청소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DB

정치권의 이 같은 '입법 방치'는 국회 내부의 노동 환경에서도 드러난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 등에서 근무하는 미화·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국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마쳐야 하는 새벽 미화 노동자들은 냉방 장치가 켜지지 않은 '찜통 복도'에서 일하고 있다.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는 한 청소 노동자는 "오전 6시부터 일하는데, 그 시간대에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는다"라며 "이번 여름처럼 너무 더울 때는 가동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하고 싶지만, 에너지 절약 같은 경제적 이유를 생각하면 '내가 참아야지'하고 감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에어컨 가동 시간이 조금 당겨지긴 했지만, 본격적인 국회 업무 시작 전 청소를 마쳐야 하는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땀 흘리는 노동이 강요되고 있는 셈이다.

국회 본청에서 만난 한 미화 노동자는 얼굴에 땀이 흥건한 채 "휴게실은 에어컨이 잘 나오지만, 정작 일을 하는 복도는 너무 덥다"며 "에어컨을 일찍 켜주면 좋지만 우리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국회가 신경 써준다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서운한 것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정치권에서는 폭염이 일시적 자연재해가 아닌 구조적 기후재난으로 자리 잡은 만큼, 기온이 떨어진 지금이야말로 법안의 실효성과 예산 반영 가능성을 냉정하게 심사할 적기라고 지적한다.

환노위 소속 한 관계자는 "폭염 관련 법안은 기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정치적 선언으로 발의된 경우가 많아, 기온이 떨어지거나 정국 이슈가 바뀌면 동력을 잃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당 관계자도 "발의된 법안 상당수가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에 부담을 넘기거나 보편적 에너지 지원금을 남발하는 선심성 대책에 그치고 있다"며 "장기적인 재원 대책을 바탕으로 소득 하위 계층에 표적화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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