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김시형 기자] 6·3 지방선거에서 참패 위기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서울 수성'이라는 극적 반전을 이뤄냈지만, 당 지도부의 셈법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선거 당일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고리로 재선거를 요구하려던 장동혁 대표의 국면 전환 시도는 오세훈 시장의 역전승으로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일부 지역구 사수와 재보궐선거 성과를 내세워 사퇴론을 일축하고 나섰지만, 전통적 텃밭을 내준 성적표 앞에 당내 '지도부 책임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표 초반 고전하던 경남과 서울에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최악의 참패는 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전통적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부산과 울산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어준 데다, 절대적 우세 지역이어야 할 대구에서조차 접전 양상이 펼쳐지면서 당의 지지 기반이 흔들렸다는 위기감 역시 팽배한 상황이다.
수도권 캠프의 한 관계자는 <더팩트>에 "장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며 "대구에서 접전이 벌어진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데 지금 상황을 '선방했다'고 보는 것은 양심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영남권 한 의원도 "대구·경북을 지키는 건 당연한 본전"이라며 "충청권에서 최소 한 곳 정도는 확보했어야 했다"고 했다.
특히 PK(부산·울산·경남) 지역구 한 의원은 "장 대표가 이제는 책임정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며 "선거에서 졌는데도 희망의 불씨를 지켰다는 식으로만 본다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을 지키고 일부 재보선에서 선전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패배를 패배라고 인정하는 데서 쇄신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장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서는 장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관위의 '부실 관리' 의혹에 대한 공세가 선거 패배의 방어막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당 지도부의 선거 패배 책임을 회피하는 썩은 동아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선거 패배 책임과 선관위 개혁 책임은 다르다. 이재명 정권의 오만과 실정이 클수록 이번 지선의 결과는 당 지도부의 리더십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친한(친한동훈)계는 장 대표의 거취를 압박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안상훈 의원은 페이스북에 "장동혁 지도부가 황당 제명한 한동훈 전 대표의 의회 입성, 장동혁 지도부와 거리 둬서 서울을 지킨 오세훈 시장"이라며 "합리적 보수 재건의 신호탄이다. 민심은 천심, 당 지도부는 거취를 속히 정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정훈 의원 역시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는 본인들이 숙고할 거라 보는데, 우리 당이 사랑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지선이 변곡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친한계로 분류됐던 김소희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장 대표가 지원유세 간 곳은 다 졌다. 이게 민심"이라며 "민심의 회초리, 국민의힘 지도부는 총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안팎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는 임기 완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선거 이후 첫 메시지로 페이스북에 "저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당원들과 함께 우리가 나아갈 새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장 물러나기보다 직접 당 수습에 나서겠다는 정면 돌파 선언으로 풀이된다.
선거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의원총회에 장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이 자리에서 지도부 거취 문제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국민들이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또 향후 어떤 길로 가야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는지 답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며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 누가 도움이 됐고 안 됐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당내 갈등 확산을 경계했다.
현재 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광역단체장 2곳 사수)와 비교해 이번엔 4곳을 지켜냈고, 재보궐선거에서도 4석을 확보한 점을 들어 '체제 유지'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비당권파와 친한계를 중심으로 조기 전당대회 개최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공세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어 주도권을 둘러싼 내홍과 당권 투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