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수민·정채영 기자] 6·3 지방선거 결과, 여야 지도부가 나란히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16곳 중 10곳이 넘는 곳에서 승리했지만 험지 개척에 실패하면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연임 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보수 텃밭에서의 고전으로 사퇴론에 직면하는 듯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불거지며 당장의 거취 압박은 피한 모양새다. 여기에 무소속 한동훈 전 대표의 원내 진입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낙선이 맞물리며 향후 정치권 지형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본투표 당일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굳은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정 대표는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선거 승리 소식에 일단 한숨을 돌렸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반정청래' 정서의 진원지로 꼽혔던 전북에서 이원택 민주당 후보가 김관영 무소속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지도부 책임론 확산을 일정 부분 차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안도했다.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면서다. 당내에서는 정 대표가 직접 지원 유세에 나선 서울시장 선거 승리 가능성에 지도부 책임론을 상당 부분 희석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13곳, 재보궐선거 14곳 중 11곳을 석권하며 압승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정권 출범 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여권의 조직력과 지지세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당의 성적표와 별개로 정 대표 개인의 정치적 성적표는 다소 엇갈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배한 데 이어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와 부산 북구갑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정 대표는 정치 은퇴를 선언했던 김부겸 후보를 직접 설득해 대구시장에 출마시킬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보수 텃밭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번 선거를 통해 정 대표의 외연 확장 전략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평택을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까지 승리를 기대했지만 김용남 민주당 후보는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김 후보와 조국 혁신당 대표가 함께 출마하면서 범여권 표심이 분산된 점도 패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정 대표가 공을 들인 전략 지역들이 잇따라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으면서, 정 대표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산 북구갑 패배는 정 대표에게 뼈아픈 결과로 꼽힌다.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출신인 하정우 후보는 당초 출마를 고사했지만 정 대표가 직접 공을 들여 영입한 인물이다. 하 후보 차출 과정에서는 대통령실 AI 정책 컨트롤타워의 공백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개회의에서 "할 일도 많은데 작업 들어온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하 후보 역시 대통령실 잔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결국 출마를 택했다. 그만큼 당 안팎의 관심이 컸던 인사였던 만큼 이번 패배가 정 대표에게 주는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민주당 광역단체장 캠프 관계자는 <더팩트>에 "전북 승리는 의미가 있지만 원래 민주당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역이었다"며 "전략 지역 성적표를 종합하면 정 대표가 이번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론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국 혁신당 대표의 패배 역시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에서 조 대표는 범여권의 상징적 승부수로 평가받았지만, 평택을 재선거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민주당과 혁신당의 연대·통합 논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이 결국 민주당과 혁신당 모두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안긴 셈이다.
장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당내 기류 역시 요동치고 있다. 애초 보수 텃밭인 대구에서조차 접전 양상으로 인해 선거 직후 '장동혁 사퇴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선거 당일 불거진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흐름을 바꾸는 돌발 변수로 부상한 모습이다.
개표 초반, 민주당이 서울을 비롯한 10곳에서 승기를 잡고, 국민의힘은 경북 1곳 우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데다 대구 판세마저 박빙으로 흘러가자 당 내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수세가 강한 전통적 지지 기반에서의 고전은 사실상 지도부의 선거 전략 실패와 한계를 방증하는 결과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남권 캠프 한 관계자는 "당의 결속을 저해한 현 지도부 체제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구가 접전이라는 사실 자체가 뼈아프다"라며 "선거 승패를 떠나 지도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만약 거취 표명을 미룰 경우, 차기 지도부를 준비하는 인사들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의원들의 반발로 극심한 내홍이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정국의 흐름을 급격히 바꿨다. 서울 지역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은 온통 선관위의 부실 관리 논란으로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거취 압박을 받던 장 대표로서는 정국을 전환할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장동혁 사퇴론'의 동력이 상당 부분 약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부진의 원인을 지도부의 책임보다는 선관위의 관리 부실 문제로 돌릴 수 있는 구실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 대표는 당장 거취를 표명하기보다는, 선관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그 공세의 최전선에 설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당 체제를 수습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며 선거 결과에 따른 당내 비판 여론을 선관위 이슈로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당내 비주류와 소장파의 쇄신 요구가 잠재돼 있는 만큼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수도권 캠프 한 관계자는 "원래 선거는 당 지도부와의 시너지가 필요한데, 현 지도부 체제에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라며 "대구 지역의 접전은 말도 안 된다. 선관위의 투표 관리 논란으로 인해 지도부 책임론이 희석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특히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후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동훈 전 대표의 복귀는 장 대표의 리더십을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한 전 대표로서는 무소속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원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입지를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향후 당권 경쟁에서 확실한 차기 주자로 직행할 수 있는 명분과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장 대표에게는 한 전 대표의 생환 자체가 입지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요소가 될 전망이다. 선거 고전으로 장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에서, 한 전 대표의 원내 귀환은 당내 친한(친한동훈)계와 소장파 의원들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