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13명이라는 역대 최다 무투표 당선자가 쏟아졌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낡은 지역 구도 속에서 수백만 유권자는 후보를 검증할 기회를 잃었고, 천문학적 예산을 다룰 지역 일꾼들은 아무런 평가 없이 선출됐다. <더팩트>는 총 5편에 걸쳐 '선거 없는 당선'이 초래한 지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무투표 당선의 실태부터 해외 주요국의 대응, 그리고 선거법에 묶인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현행 제도의 모순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수민·이태훈 기자] 무투표 당선의 팽배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해결책을 찾으려는 정치권의 노력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더는 무투표 당선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한국형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 개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방선거(지선) 무투표 당선자 규모는 1988년 738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2006년 48명까지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2022년 지선에서는 490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고, 올해 6·3 지선에서도 504명의 무투표 당선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3번째로 큰 규모다.
무투표 당선 문제점은 단순히 경쟁의 소멸이 아닌,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데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무투표 당선이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보통선거의 원칙 △모든 유권자가 후보자를 직접 선택해 당선자를 결정해야 하는 직접선거의 원칙 △투표를 통해 국민의 권한을 선출직 공직자에게 위임하는 국민주권 원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인 입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원내 소수 정당을 중심으로 산발적 법안 발의만이 있을 뿐,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거대 양당은 침묵하는 상황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통화에서 "지금까지 무투표로 편하게 당선된 이들은 대부분 거대 양당 소속이었다"며 "무투표 당선이 기득권화된 것인데, 거대 양당이 이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해결책 논의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투표 당선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법으로는 최다 득표자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및 거대 양당 후보의 선출 가능성이 높은 2인 선거구의 축소다.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하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선거에서 3~5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해 정당들이 자신들의 약세 지역에도 후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군소 정당 후보의 출마 확대도 유도해 유권자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지선에서만큼은 지역 정당을 허용해 정당 간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윤왕희 한국지방의회학회 회장은 <더팩트>에 "영호남을 사실상 장악한 정당이 있는 상황에서 이외의 정당들은 실제적 선택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며 "무투표 당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선에 한해 그 지역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로컬 파티(지역 정당)가 허용돼야 된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현행 정당법은 지역 정당을 사실상 불허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 밀착 행보에 강점이 있는 지역 정당이 허용될 경우, 유권자의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경쟁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입법을 통한 무투표 당선 억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개혁진보 4당은 지난 2월 입후보자 수가 정원 이하일 경우 찬반투표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박상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통화에서 "무투표 당선은 우리 정당 제도와 정치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며 입법을 통해 무투표 당선 자체를 금지하는 등의 인위적 해결책 제시를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