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이재명 정부의 일관된 관계 개선 시도에도 북한의 이렇다 할 호응은 없었다. 오히려 북한은 대남 정책을 공식화하는 계기 때마다 '한국은 불변의 적대국'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헌법을 개정해 통일 조항을 걷어내고 영토 조항을 신설한 뒤 두 국가 제도화 후속 조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애초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남북 관계 자체가 녹록지 않았다는 점에선 이견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선제적 유화책이 상황 관리 측면에서 유효했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다만 정부의 거듭된 손짓에도 북한이 제 갈 길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대북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계속된 달래기에도…'적대적 두 국가·핵 보유국 지위' 강행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북 유화책을 전개했다. 지난 정부에서 기폭제가 된 적대와 대결의 남북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기치에 따라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를 지시했다. 국가정보원은 52년 만에 대북 TV·라디오 송출을 끊었다. 이후 북한이 대남 방해 전파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되자, 추가 상응 조치와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모색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정부 내에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첫 공식 입장으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대남 확성기 일부를 철거하고 있다는 정부 발표에는 "철거한 적 없고, 철거 의향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핵화 망상증"이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의 조처와 무관하게 '적대적 두 국가' 확립과 '핵 보유국 지위' 확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외면에도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의 문을 두드렸다. 동·서해에 구조된 북한 주민 6명을 송환했고, 북한 주민 추정 사체를 북측에 인도하겠다고 통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직후 한미연합훈련 조정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 철거도 마쳤다.
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지난 정부 '자유의 북진론'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 등 대북 3대 원칙을 밝히며 정부의 일관된 기조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어떠한 반응도 없이 톈안먼 망루에서 북중러 밀착을 과시하는 등 자신들만의 전략적 입지 강화에 주력했다.
◆통일 지우고 핵 무력 지휘권 명문화…더 좁아진 바늘구멍
연초에는 대북 무인기 침투 사건으로 남북 간 입장 교환이 활발히 이뤄졌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바늘구멍 뚫기'를 시도했으나 북한은 한 치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무인기 사건에 유감을 표명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라고 답했지만, 관계 개선의 신호로 해석한 우리 정부에 대해 북한 당국은 "개꿈 같은 소리"라고 힐난했다.
북한은 향후 5년의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9차 당대회에선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실체'로 규정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못 박았다. 또 "국가 지위를 불가역적으로 다졌다"며 핵 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했다. 김 위원장은 당대회를 거쳐 새로 구성한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에선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한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북한은 헌법까지 개정해 이를 제도화했다. 통일과 민족 개념을 모조리 삭제하고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핵무력 지휘권을 명시하며 핵 포기 불가를 분명히 했다. 헌법에까지 적대성을 규정하진 않았더라도 남북을 완전한 두 국가로 명문화한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철저한 선 긋기는 최근 방남한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선수단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날, 집권 후 처음으로 전군 사단·여단 지휘관을 불러 남부 국경 강화를 지시했다. 선수단 파견은 국제 대회 참가를 위한 것일 뿐 한국과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평행선 달리는 남북…"관계 돌파구는 정교한 밀고 당기기에서"
정부의 지난 1년간 대북 기조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남북 간 긴장 수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화 조치는 불가피했다는 시각과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지난 정부에 비해 한반도 상황이 악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선제적 조치에 북한도 소극적으로 호응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가 올해를 남북 평화공존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는데, 그런 면에서 출발점은 적절하게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정책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데다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 우리는 끝없이 상대하겠다고 하는 건 오히려 북한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 관계는 상호성이 필요한데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정교한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통일부는 이재명 정부 1년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 주요 성과와 관련해 "우선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를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앞으로도 한반도에서 남북 간 평화로운 공존을 제도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