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 없는 마을④] 인구소멸이 가속화한 무투표 당선?…지방 정치는 '비상'


인구감소지역 중 3분의 1에서 '무투표 당선' 발생
선거 체계까지 '흔들'…지방 민주주의 형해화 우려

지방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다수의 무투표 당선은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근간으로 보이나, 인구감소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인구감소가 지방의 정치 경쟁 생태계를 붕괴시켜 무투표 당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사라진 선거가 고착화하면서 지방의 민주주의가 형해화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사진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9일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임영무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13명이라는 역대 최다 무투표 당선자가 쏟아졌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낡은 지역 구도 속에서 수백만 유권자는 후보를 검증할 기회를 잃었고, 천문학적 예산을 다룰 지역 일꾼들은 아무런 평가 없이 선출됐다. <더팩트>는 5편에 걸쳐 '선거 없는 당선'이 초래한 지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무투표 당선의 실태부터 해외 주요국의 대응, 그리고 선거법에 묶인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현행 제도의 모순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경북(안동·영덕)=김수민·이태훈 기자] 지방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다수의 무투표 당선은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근간으로 보이나, 인구감소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인구감소가 지방의 정치 경쟁 생태계를 붕괴시켜 무투표 당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사라진 선거가 고착화하면서 지방의 민주주의가 형해화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달 29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89개 시군구 중 6·3 지방선거에서 1개 이상의 선거구(광역의원·기초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배출된 지역은 총 29곳에 달한다. 인구감소지역 3곳 중 1곳에서 무투표 당선이 발생한 셈이다.

과거에는 무투표 당선을 지역주의 산물로만 보는 경향이 짙었다. 지역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지닌 정당들이 영호남에 각각 존재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정당은 해당 지역에 출마할 후보를 구하지 못해 무투표 당선이 다수 발생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선거비 100% 보전(15% 이상 득표)마저 불투명한 지역에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고착된 지역주의가 무투표 당선을 발생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짚었다.

평일 오전 출근 시간임에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덕곡2리 마을회관 주변과 인근 도로는 대체적으로 한산했다. 영덕읍은 영덕군 인구의 30%가 거주하는 영덕에선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인구감소의 여파를 지워내긴 어려운 분위기였다. /영덕(경북)=이태훈 기자

다만 최근 발표된 연구와 보고서들은 인구감소 또한 무투표 당선 증가의 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구감소 지역의 주요 특징인 청년층 유출과 고령화는 지역의 정치 신인 수급 어려움과 직결되어 장기적으론 무투표 당선 증가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이번 지선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배출된 인구소멸 지역 대부분은 이미 초고령사회(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 20% 이상)에 진입한 상태다.

일본 전국정촌의회 의장회 발간 자료 등에 따르면,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 위기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에도 인구수가 적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통일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높은 비율로 발생하는 추세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2021년 발간한 '국가위기 대응을 위한 지방소멸 방지전략의 개발' 연구보고서에서 "인구감소가 지역 공동체 기능 수행에 상당한 정도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도 이같은 경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영덕군선거구에서 경북도의원 선거에 출마한 임민혁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번에도 (제가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국민의힘 후보의 무투표 당선이 유력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인재들이 지역을 떠나는 것도 무투표 당선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북 안동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도 "지역의 젊은 정치인을 키워 무투표 당선을 억제해야 하는데, (정치 신인을 구해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영덕과 안동은 행안부가 지정한 89곳의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돼 있다.

경북 안동 옥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걸린 선거 벽보. 해당 지역은 선거구의 도의원과 시의원이 무투표로 당선되면서 다른 지역과 달리 경북도지사, 안동시장, 경북교육감 선거의 벽보만 걸렸다. /안동(경북)=이태훈 기자

인구감소는 국가 선거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이미 부상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7일 공개한 '반복되는 예외상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지방의원 정수 및 선거구역표 입법 분석' 보고서는 "이번 지선에 한정해 도서·산간·접경·농산어촌 지역, 인구감소지역 등에 대해서는 지역대표성이 반영되도록 선거구를 정하도록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인구감소로 인해 기존 선거제 원칙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을 인정한 내용으로 읽힌다. 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더 이상 국회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지방이 자율적으로 의원정수와 선거구획정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무투표 당선의 고착화가 진행 중인 지방 정치권은 비상등이 켜졌다. 무투표 당선의 확대는 단순 경쟁 소멸을 넘어 지방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왕희 한국지방의회학회 회장은 통화에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경쟁해야 후보자들도 최선을 다하고 유권자의 선택도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무투표 당선은 선거의 결과가 예측 가능해져 선거로서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도 좋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sum@tf.co.kr

xo9568@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