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와 중국몽 공존"...시진핑 수사학, 그 뒤에 숨긴 '노골적 경고'[이우탁의 인사이트]


'태평양의 절반‘에서 ’지구의 절반‘, 이제는 ’공존하자‘ 메시지 날려’
'中 패권전략‘ 설계자 왕후닝, ’美 쇠퇴‘ 예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한 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톈탄공원(천단공원)을 방문하고 있다./베이징=AP.뉴시스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중화민족의 부흥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공존할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전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만찬에서 한 이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2013년 6월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시 주석이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시 갓 주석에 올랐던 시진핑은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고 말했다. 19세기말 서구 제국주의에 짓밟혔던 중국이 어느덧 굴기(崛起)’에 성공해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 앞에서 "태평양의 반을 나누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서니랜즈 회동 이후 10년이 지난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은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고 말했다. 태평양이 아닌 지구의 반을 나누자는 ‘패권 도전’을 선언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시진핑은 미국을 향해 ‘공존’의 메시지를 던졌다. MAGA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구호이다. 패권국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트럼프 앞에서 시진핑은 "중미 양국 인민은 모두 위대한 인민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 서로 함께 성취하면서 세계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더 나아가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묵직한 화두까지 던졌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하버드 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2017년 출간한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중 관계를 분석하며 제시한 틀이다.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엘리슨 교수는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벌어진 초강대국과 도전국의 충돌사례를 설명했다. 모두 16번의 '투키디데스 함정' 사례가 있었는데 12차례 전면전으로 이어졌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4번 있었다고 서술했다. 대표적으로 20세기 초 서구 서계 해상패권을 높고 경쟁했던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니까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중국은 전쟁을 피할 준비가 돼 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중국을 인정하고 대접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니 ’지혜로운 선택‘을 하라고 재촉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기가막힌 상황일 수 있다.

사실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미국의 지원과 협력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과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가입시키고 중국과 줄곧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이다. 미국의 배신감과 함께 ’중국을 반드시 굴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어쩌면 저돌적인 ’이단아‘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에 세운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거칠게 중국을 압박하라는 시대적 소임과 함께.

그런 트럼프를 앞에 두고 시진핑은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 특히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한 직후 시진핑은 대만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이를 잘 처리하면 양국 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양국이 부딪히거나 심지어 충돌해 전체 관계를 매우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했다. 노골적인 경고장이다.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거의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패권전략을 설계한 왕후닝(王滬寧)을 떠올렸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기도 한 왕후닝은 중화민족의 부흥, 즉 ’중국몽‘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80년말 미국을 여행한 뒤 쓴 책에서 "서국의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집단주의에 결국 패배한다"고 썼다.

장쩌민에 이어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패권도전 행보는 왕후닝의 설계도를 이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제 중국은 ’서서히 쇠퇴하고 있는‘ 미국과 충돌하기 보다는 ’기다리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대신 핵심 이익인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한 ’레드라인‘으로 대만 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시진핑의 현란한 수사학이 어찌 변화할지, 그리고 왕후닝의 그림자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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