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정당.' 지역에서 출발한 풀뿌리 정치 조직들이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 현행 정당법상 지역 정당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정책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정당'이라 부르는 이들이 존재한다. <더팩트>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제도 밖에 놓인 지역 정당의 실태와 한계, 그리고 가능성을 짚어봤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변화와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왜 지금 한국 정치에 지역 정당 논의가 필요한지, 지역에서 시작된 정치가 과연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6편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정채영·김시형 기자] 지역 정당들은 이번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도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동네 공약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더팩트>는 직접행동영등포당과 은평민들레당에 주요 후보들의 공약 평가를 요청했다.
직접행동 영등포당과 은평민들레당은 각자의 활동 지역이 속한 서울시 시장 선거 공약을 평가했다. 서울시 정책이 구 단위 현안과 직결되는 만큼, 서울시장 선거 역시 지역의 삶을 바꾸는 '생활 정치'의 영역이라는 시각이다.
이들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착착개발' 공약에 대해 "오세훈식 공급 위주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정 후보의 정책 중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지방정부 권한 강화는 환영할 만하지만, 여전히 소유 중심 부동산 정책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주거가 투기와 재테크 수단이 된 왜곡된 시장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임대차 시장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북권 철도망 확충과 광역환승체계 구축 등을 골자로 한 '메가서울 교통혁명' 공약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정당은 '메가서울' 구상이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가속화하고 에너지 소비와 인프라 비용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고 봤다. '30분 통근 도시'를 위해서는 대규모 토건 사업과 인프라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역 정당들은 서울이 속도와 효율 중심 도시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덜 이동해도 되는 생활권 중심 도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기후동행카드 외에 보행 환경 개선이나 자전거 도로 확대 등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은 부족해 보인다는 평가도 내놨다. 다만 생활권 단위 버스 운영 방안 등 대중교통 사각지대 해소 정책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공약이라고 봤다.
'아이 키우기 좋은 서울' 공약에 대해서는 소아과 전문의 확보와 의료 체계 개선 없이 추진될 경우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짚었다. 24시간 소아 의료체계와 야간 돌봄 확대 역시 노동 환경 개선과 함께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대표 사업인 '손목닥터 9988'에 대해서는 그동안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실질적인 건강 지표 개선 효과가 불분명하고, 고령층 등 취약계층이 이용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역 정당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AI 기술을 앞세운 건강관리 정책이 실제 시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기보다 전시성 사업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오 후보의 '녹색 쉼표, 물빛 일상' 공약에 대해서도 수변 개발 중심 정책이 생태계 훼손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동네 정원 3000개 조성 같은 사업의 생태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개발과 소비가 아니라 보전과 공존 중심의 도시 철학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전력을 언급하며 공공 돌봄 안전망을 축소해놓고 다시 돌봄 정책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리적 인프라 확대에만 집중할 경우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권영국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 공약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권 후보의 공약은 주거·교통·의료 같은 필수 서비스를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시민의 기본권으로 접근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지역 정당은 이 같은 정책 기조에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유 중심 부동산 정책을 거주 중심으로 전환하고 세입자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서울의 주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여의도 중심' 행정 우려한 영등포구
조유진 민주당 영등포구청장 후보는 '영등포구'를 '여의구'로 변경하고 행정동 이름을 개편하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대해 직접행동영등포당은 "지방자치의 기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등포구청장을 뽑았는데 여의도구청장을 뽑은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불만이 나온다"며 "여의도 중심 행정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문래동에 추진되던 제2세종문화회관이 여의도공원으로 이전된 사례 등을 언급했다. 지역 간 기반시설 불균형에 대한 주민 불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다. 이름을 바꾸겠다는 공약은 지역의 정체성보다는 부동산 개발 논리에 가까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웅식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 가운데 어린이 종합병원 유치와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 등 생활밀착형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직접행동영등포당은 "영등포 역시 높은 지가로 인해 젊은 부부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지가 상승 중심 정책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정책은 환영받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 후보의 '경부선 지하화'와 'UAM 버티포트 유치' 공약을 두고 직접행동영등포당은 "경부선 지하화는 막대한 비용 대비 편익 논란이 반복돼온 대표적인 선거용 공약"이라며 "이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정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교통 전략은 새로운 교통수단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탄소 배출 없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 구조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자전거 전용도로 확대나 공공 전기자전거, 친환경 버스와 관련된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발 속 '정주권' 고민하는 은평구
은평민들레당은 김미경 민주당 은평구청장 후보의 '점·선·면 대전환' 비전에 대해 재개발 중심 도시 구상이 지역 공동체를 해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점·선·면 대전환 비전은 은평의 주요 거점과 생활권, 지역 전체를 연결해 향후 10년, 20년의 도시 구조를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은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세와 주거 환경으로 청년층 유입이 활발한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대규모 재개발이 반복되면서 기존 주민들이 지역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GTX-A 개통 등으로 베드타운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발 위주로 짜인 김 후보의 공약은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은평민들레당은 "가난한 주민을 밀어내고 지역 공동체를 해체하는 방식의 개발 공약은 좋은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주권 보장 정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혁신파크 개발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울시가 민간 매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김 후보 역시 공공성보다 개발 논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혁신파크는 주민들이 산책·휴식·놀이를 즐기는 은평의 사실상 유일한 대규모 평지 공원"이라며 "개발에만 집착하는 것은 주민 복지를 축소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이맘택시' 정책에 대해서는 신청 절차와 이용 제한이 많은 점을 짚었다. 특정 계층 지원을 넘어 모든 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마을버스 확대나 무상 공공교통 같은 보편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건축 교통체증·개발 심화 고민하는 과천
과천시민정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직접 후보를 내지는 않지만, 주요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시장 후보들에게 정책 질의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마장 이전 부지 개발과 교통 대책, 재건축 문제 등에 대해 후보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묻겠다는 취지다.
구자동 과천시민정치당 대표는 "찬성이면 왜 찬성하는지, 반대라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주민들이 알 필요가 있다"며 "선거 시기야말로 지역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천은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심화된 교통 문제가 꾸준한 현안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개발과 대규모 재건축이 이어지면서 양재IC 일대 교통 체증이 심각해졌지만, 이에 대한 중장기 대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구 대표는 "예전에는 10층 안팎 아파트였던 곳들이 재건축 이후 30층이 넘는 대단지로 바뀌고 있다"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데 교통 대책은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경마장 이전 부지 개발 문제를 두고도 지역 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표면적으로는 교통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집값이나 지역 희소성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며 "일부 주민들은 추가 개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 문제 역시 주요 의제로 꼽힌다. 과천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남녀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고교 내신 문제와 여고 기피 현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은희 공동대표는 "과천여고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내신 구조상 불리하다는 인식이 강해 학부모들의 고민이 크다"며 "남녀공학 전환이나 다른 학교와의 통합 등 여러 대안이 지역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천 시민들이 실제로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시장 후보와 시의원 후보들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질의서를 통해 확인해볼 계획"이라며 "특정 입장을 강요하기보다는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공개적인 논의 구조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과천시민정치당은 현재 분기별 토론 행사인 '과천살롱'을 열어 교권 침해 문제부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구조, 재건축 과정의 주민 참여 문제 등 다양한 생활 밀착형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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