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살인자'라고 불리는 석면은 최대 40년까지의 잠복기를 거친 뒤 폐암과 석면폐증, 악성중피종 등 치명적 질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발병 시점엔 이미 노출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고 특히 악성중피종에 걸리면 치명률이 높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2009년부터 사용이 중단됐지만, 공공기관은 일시적으로 이용을 중단하기 어려워 제거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디다. <더팩트>는 준공 50년이 지난 국회 본관이 여전히 '석면건축물'인 현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9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베풀어졌습니다. 새 의사당은 대지 10만 평에 연건평 2만4700평 석조 건물로 지하 2층 지상 6층인데 동양에서 가장 큰 국회의사당입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준공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이자 입법부의 심장부로 상징적 공간이지만, 건물 내부는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의 노후 인프라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석면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어 국회의원은 물론 국회 본관에 상주하는 직원 등 구성원들의 건강 우려가 제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석면 관리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은 현행법상 '석면건축물'에 해당한다. 건축물 관리대장상 석면 함유 자재 면적은 분무재(뿜칠재) 4만9563.48㎡, 천장재 595㎡, 벽재 2292.71㎡ 등 총 5만2451.19㎡에 달한다. 석면건축물 기준이 5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회 본관은 이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의사당 천장 '돔'과 같은 일부 구역의 경우 위해성 평가에서 '높음' 판정받았다.
<더팩트>가 국회사무처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본관 지상 1층 1369.44㎡에는 '밤라이트' 자재(백석면)가, 지상 1층과 옥탑층 천장에는 내화피복재(뿜칠재)가 4만9251㎡가 있다. 해당 뿜칠재에는 백석면뿐 아니라 청석면도 포함돼 위험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석면은 백석면·청석면·암모싸이트·직섬석·투각섬석·양기석 총 6가지 종류로 분류되는데, 그중 청석면이 가장 발암성이 강하다.
보건학 석사이자 17년의 현장 경험이 있는 박재광 에코앤텍(석면조사 업체) 사업팀장은 <더팩트>와 만나 "국회 본관의 뿜칠재 규모가 다른 건물에 비해 매우 이례적"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특히 위해성 평가에서 '높음' 평가를 받은 돔 구역의 경우 진동이나 자극 등 외부적 요인이 발생할 경우 석면 물질이 일반인들에게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노출됐는지조차 모르는 상주 직원 혹은 일반인"이라며 "벽지를 붙이는 등 덮어버리는 방식의 임시 보수 등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도 "천장에 사용된 뿜칠재는 쉽게 비산될 수 있어 훨씬 위험하다"며 "특히 청석면이 포함된 경우 위험성이 더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천장에 있는 뿜칠재는 노후화되거나 진동이 발생하면 흩날릴 가능성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며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는 사실상 틀린 말"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2023년 예산 4억6000만 원을 투입해 본관 지하 1층 복도 923.27㎡ 규모의 석면 제거 공사를 진행, 석면 벽재의 40%를 철거했다. 다만 지상 1층에는 60%의 석면 벽재가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고, 다른 석면 자재도 상당수가 제거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석면 제거를 위한 예산조차 아직 확보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사무처는 2024년부터 관련 예산을 요구해 왔고, 2027년 예산에도 반영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석면은 내화성·단열성·절연성 등이 뛰어나 과거 건축 자재로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6년부터 1990년까지 약 6만 톤의 석면을 소비했다. 특히 1992년엔 9만5000톤을 수입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폐암과 악성중피종 등 석면 노출에 따른 건강 피해가 있다고 보고되면서 인식이 급격히 바뀌었고,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됐다. 이후 석면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따라 2009년부터 제조·수입·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석면으로 발생하는 질환들의 잠복기가 길게는 40년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석면폐증은 15~20년, 폐암은 10~20년, 악성중피종은 20~30년의 잠복기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석면에 노출됐더라도 당장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 인식조차 못 한다는 것이다. 당장 공기질 석면 농도에는 이상이 없더라도 노후 건축물에서 균열이나 보수 공사, 설비 작업 등이 발생할 경우 석면이 흩날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회 본관에는 벽재 외에 분무재와 천장재 등 주요 자재에 상당 부분 석면이 남아 있어 전면적인 제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회와 같이 다중이용시설일수록 보다 보다 체계적인 제거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후건축물은 평상시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공사나 설비 점검 과정에서 적은 양의 석면이더라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