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불씨 당겨진 개헌론, 과거와 다를까


과거부터 번번이 여야 간 개헌 논의 무산
野 반대 기류…'단계적 개헌' 불발 가능성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6·3 지방선거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수명을 다했다는 비판이 많다. 40년 가까이 된 헌법이 급변하는 시대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여당도 야당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러면서 개헌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2000년대 들어 정치권은 본격적으로 개헌 문제를 다뤄왔다. 매년 국회의장의 제헌절 기념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는 단연 개헌이었다. 국회 차원에서 개헌 방향성 등 헌법 연구도 활발했다.

그러나 번번이 여야 간 개헌 논의가 흐지부지되거나 무산됐다. 개헌은 국면 전환이나 정국 주도권 등 정치적 득실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고 판단한 정당의 반대 영향이 컸다. 실제 개헌론은 정권의 위기 순간에 발화됐다. 이명박 정권은 2009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로 민심이 악화하자 개헌론 불씨를 피웠고,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들썩였던 2016년 10월 개헌론을 꺼내 들었다.

특히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 등 전면적 개헌에 대한 여야의 합의는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3월 전면적 개헌안을 발의한 이후 민주당은 그해 6월 지방선거와 개헌합의안의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려고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당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권은 본회의에서 개헌안에 대한 표결에 불참했고, 의결정족수 미달로 대통령 개헌안은 폐기됐다. 당시 야권은 국회 주도의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정부 개헌안을 반대했다.

또다시 개헌론이 정가의 화두로 떠오를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단계적 개헌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데 이어 이튿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도 개헌 과제에 대한 법리 검토에 본격 착수하겠다"라고 밝혔다.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지방자치 강화, 계엄 요건 강화의 단계적 개헌을 제안한 우원식 국회의장도 반색했다. 아직 국회 개헌특위는 구성되지 않았지만 여당이 주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개헌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 검토를 지시했다. /청와대

그렇지만 개헌을 둘러싼 거대 양당의 입장 차는 늘 있었고 이번에도 비슷한 분위기다. 방안과 시기 등을 놓고 각 정당의 시각차가 분명하다.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특정 사안만을 골라 추진하는 '원포인트 개헌'은 자칫 졸속 개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앞서 송언석 원내대표 역시 최근 민생 현안이 시급하다며 지방선거 이후 개헌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요원하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갖고 있더라도 의결정족수인 200석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의힘의 협조가 필수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가진 야당이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리적인 시간도 촉박하다.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려면 다음 달 7일까지 국회의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 하지만 여야가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이룰지조차 불투명하다.

여야가 이미 정치적 저의 여부를 두고 공방전을 전개할 만큼 개헌 동력이 붙을지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연임 개헌 음모론을 제기했고 민주당은 의도적 선동이라고 한차례 맞붙었다. 과거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개헌을 악용한다는 반대론과 판박이다.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조짐이 곳곳에서 보인다. 과거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국민의힘의 반대 기류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헌을 둘러싼 복잡한 기류가 민생을 덮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개헌은 필요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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