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공천 준비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와 친하다"는 말과 각종 직함을 내세운 '사칭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말 한마디'로 신뢰가 만들어지는 정치판의 허점을 파고들어 공천판을 흔들거나, 억 단위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기가 반복되고 있다. <더팩트>는 두 편에 걸쳐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짚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구조적인 배경과 재발 방지책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선거철만 되면 '누구와 친하다'는 말은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당권을 쥔 지도부 인맥은 특히 강하다. 사람 간의 관계가 중시되는 정치권에서 유명 정치인과 찍은 행사장 사진이나 당으로부터 받은 상장들은 신뢰의 징표처럼 통용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틈을 노린 사칭·사기 피해에 대한 전방위적인 '주의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민의힘 '마포을 청년위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20대 남성 A 씨가 공연기획 업체에 접근해 무리하게 자신의 공연을 추진하다 업체에 수천만 원대의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지난해 말 선거 후원 등을 목적으로 한 성악 공연을 의뢰했으나, 업체 측이 "대중 인지도가 낮아 위험 부담이 크다"며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A 씨는 "마포구 상인회에서 후원 차원으로 20만 원대 표 1000장을 전량 구매하기로 확약했다"며 계약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공연 기획사 대표인 B 씨는 통화에서 "A 씨가 한동훈 전 대표나 나경원·배현진 의원 등 정치권 주요 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신뢰를 쌓았고, '망원동에 빌라가 두 채 있다' '○○일보 친인척' 등 재력을 과시했다"며 "의원 배지까지 달고 다녀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실제 판매량은 8장 수준에 그쳤다. 그중 4장은 A 씨가 산 것이라고 한다. 업체 측은 공연장 대관 등 선지출 비용이 발생한 상황에서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이어 A 씨와 작성한 계약서에 따라 일정 기한까지 보증금을 받기로 했지만,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록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B 씨는 "계약서에는 티켓 판매가 일정 기준 미달하면 보증금을 지급하도록 명시했고, 저희가 지출한 비용만 3000만 원대 후반"이라며 "보증금으로 티켓값의 50%인 약 6650만 원을 받기로 했지만 지급되지 않아 형사 고소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월 650만 원 급여와 고급 차량, 전셋집 제공 등을 약속하며 보좌관 2명을 채용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약속을 믿고 본업을 중단했지만,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B 씨와 A 씨가 고용했던 보좌관 2명은 A 씨를 사기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고, 지난 5일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이들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금액을 합치면 약 1억원대다.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공개적인 대응에 나서는 데에는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외적으로 해명에 나설 경우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마포을 당협위원회 관계자는 "A 씨는 청년위원장을 한 적이 없고, 대학생 조직을 맡기면서 '대학생 위원장' 명함을 준 적은 있으나 성과가 없어 해임했다"며 "현재 신분은 그냥 당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 조직을 하는 데 쓰라고 준 직함을 사기 치는 데 써먹은 것"이라며 "말단 당원이 벌인 일을 갖고 당 차원에서 일을 키울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당 관계자 역시 "정당이 수사기관이 아니다 보니 입당 관계에서 모든 배경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사법적 판단을 받게 되면 향후 당원권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