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의석 3% 봉쇄조항(저지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비례 진입 문턱이 낮아질 전망이다. '1석 정당' 등장 가능성은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국회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정당 난립과 극단세력 유입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헌재가 지난달 29일 재판관 7대 2로 의견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할당 정당을 '비례대표 선거 전국 유효투표총수 3% 이상 득표 정당 또는 지역구 5석 이상 확보 정당'으로 정한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거대양당 체제가 굳어진 정치 현실에서 이 봉쇄 조항이 애초 기대했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막아 기존 거대정당의 우위를 더 공고히 한다고 봤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이미 군소정당에 불리한 구조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저지조항까지 더해져 소수정당의 의회진입에 '이중 장벽'이 됐다는 취지다.
이번 위헌 결정이 곧바로 현 의석에 소급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2대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저지조항이 없었다고 가정해 비례 의석을 다시 계산하면, 자유통일당·녹색정의당·새로운미래가 각각 1석을 얻어 원내 진입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개혁신당은 2석을 유지하고,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은 1석씩 줄어들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
소수 정당들 헌재 위헌 결정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라면서 "집권당이 책임지고 추진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서면 브리핑에서 "소수 정당에 부당하게 가해졌던 진입장벽을 허무는 역사적인 계기"라고 했고,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정치개혁의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재판연구원장)는 통화에서 "3% 미만 득표라도 국민대표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라며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국정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최병천 신경제연구소장은 통화에서 "저지선이 낮아지면 전광훈·손현보 목사나 부정선거 음모론자, 극좌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국회 진입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며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을 키워 제도 자체의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현행 저지조항은 효력을 잃으면서, 후속 입법의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대체 기준을 마련하는 등 선거제도 보완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 이후 관련 논의를 본격화 전망이다. 지난 9일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지방선거 관련 선거구 획정을 중점으로 둘 예정이라, 국회의원 선거 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뒷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방의회에도 비례대표 의석 배분을 위한 '5% 봉쇄조항'이 있는 만큼,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관련 규정이 손질될지도 관심사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90조2에는 유효투표총수의 5% 이상을 득표한 각 정당에만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5%의 지방의회 비례대표 득표 기준을 즉시 개정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부터 비례성과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헌법불합치 법률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국회가 이번 공직선거법 위헌 조항 개정에 적극 나설지는 미지수다. 정개특위 소속 한 의원은 통화에서 "아직 정개특위 차원에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지방의회 비례 의석 관련해서도 당연히 논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통화에서 "헌재 결정 취지에 맞춰 국회가 법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