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상고 출신에서 삼성전자 임원까지 오른 '신화'의 주인공으로, '현장 노동자'에서 출발해 기술자·대기업 임원·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최전선과 권력의 중심을 모두 경험한 그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답답함과 고립감, 책임감이 함께 묻어 있다.
오류 하나를 없애기 위해 수만 번의 검증을 반복하는 반도체 개발 현장에서 30년을 지낸 그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늘 한 발 늦게 반응하는 정치에 대한 해답을 오늘도 찾고 있다.
2016년 초 더불어민주당의 혼란과 현재 국민의힘 상황이 닮아 있다고 진단한 그는, '통합'과 '쇄신'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당에 '제동을 거는 정치'가 아니라 '앞으로 가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을 모두 경험한 그는 "스포츠와 전쟁의 언어 사이에 정치가 있다면, 지금의 정치는 지나치게 전쟁 쪽으로 기울어 있다"며 "정치는 개인의 분노가 아니라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 한 마디에 정치권과 당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담겨 있었다.
<더팩트>는 지난 29일 국회에서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만나 반도체 정책과 당내 갈등, 그리고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양 최고위원과 일문일답.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둔 실무형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도부에서도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나.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두 가지를 말했다. 유능한 경제 정당, 그리고 매력있는 전국 정당이 되자는 것. 동시에 과학기술 패권 국가를 만들기 위해 첨단 산업을 이끄는 유능한 수권 정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지향적이고 보편타당한 정책과 메시지를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자 전 세계적으로 안보의 무기가 된 반도체를 수십 년간 개발해온 사람으로서 정치 영역에서도 그 상징성을 가지고 일하는 게 목표다. 반도체·AI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쟁을 넘어 경제를 말하는 실용정치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기업 임원·국회의원을 모두 경험했다. 지금의 정치를 가장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때의 양향자인가.
엔지니어 양향자의 시선이다. 기술을 다뤘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정치는 많이 답답하다. 다만 정치권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반도체와 첨단 산업의 중요성을 말해왔지만, '그 얘기밖에 할 게 없냐'는 조롱도 받았다. 국정을 직접 운영해보고 세계 정세를 겪어보니 이제서야 '앗 뜨겁다'고 느낀 것 같다.
반도체는 최소 10년, 길게는 15년 뒤 산업 패러다임을 예측하며 로드맵을 짠다. 성능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그때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이라는 점을 계속 이야기해왔다.
AI·반도체·GPU·데이터센터는 모두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한다. 민주당의 탈원전 정책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최소 10년은 후퇴시켰다고 본다. 이제라도 탈이념·탈진영으로 선회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정치권에도 적어도 향후 10~15년을 내다보고 기술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정책과 입법 과정에 깊이 관여해야 한다. 반도체·AI 특위를 통해 인재군을 육성하고, 지방선거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30년 엔지니어'의 시선에서 현 정부의 반도체·첨단산업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반도체 웨이퍼는 땀과 눈물, 노력과 열정이 그대로 결과로 나온다. 기술은 이미 앞서가 있는데 정책과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 3대 강국을 이루려면 최소 원전 4기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에너지 정책뿐 아니라, 민주당이 노조의 눈치를 보며 주 52시간 문제나 휴머노이드 도입을 이념적·관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노동이냐 반사용자냐의 프레임이 아니라, 효율과 합리, 공생과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접근이 갈등을 키우고 대응 속도를 늦추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또 기술은 오류 하나를 없애기 위해 수없이 검증한다. 오류를 제로로 수렴시키기 위해 밤을 새우며 검증 커버리지를 100으로 끌어올리려 몸부림친다. 그 시선에서 여당의 검수완박 법안을 보며, 국가의 사법 시스템은 그 어떤 시스템보다 더 정교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사법 체계가 허술하면 갈등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미래 세대의 삶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용·화·평(용인·화성·평택)'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본인을 둘러싼 역할론에 공감하나.
용인·화성·평택은 세계 반도체의 수도이고, 경기 남부는 세계 반도체의 심장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온 사람으로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용인은 국가산단, 평택은 반도체 클러스터 확장을 위해 법안과 정책이 빠르게 수반돼야 하는 곳이다. 이 지역에는 단순히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인물이 아니라, 첨단 산업에 대한 비전과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당의 승리와 국민의 선택을 위해 희생과 헌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겠다.
-2016년 초 민주당 상황과 지금 국민의힘이 닮아 있다고 진단했다.
당시에도 계파 갈등이 극심했다. 지금도 계파 싸움으로 인한 당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계엄에 대해서는 사과했고, 대통령은 탈당했다. 이제 더 이상 계파 갈등으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은 왜 정치가 화합하지 못하느냐, 왜 통합의 정치를 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정치가 '스포츠'와 '전쟁'의 언어 사이에 있다면, 지금 우리 정치는 지나치게 전쟁 쪽에 가 있다.
현행 정치 제도와 사법 제도 아래에서는 정치가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계속 말해 왔다. 중대선거구제 같은 제도 개편만 이뤄져도 다양한 정당이 등장하고 민주주의가 더 꽃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 결단이라는 평가와 과도한 징계라는 비판이 엇갈리면서 당이 '통합'과 '쇄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행위다. 내부 갈등조차 수습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나. 마지막까지 타협과 해소를 위해 노력했지만, 더 이상 어렵다면 결국 결단은 불가피하다. 지도부의 결정을 존중한다.
갈피를 잡아가는 과정이고,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미래로 건너가는 시작일 수도 있지만, 장동혁 대표가 말한 '이기는 변화'의 핵심은 결국 미래다. 이제 당은 더 이상 과거에 함몰돼 있을 수 없다. 미래 비전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그래야 지방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국민의힘이 여전히 국정 운영의 대안으로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신뢰를 주는 일이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보수·진보 진영을 모두 경험했다. 정치권 밖에 있는 중도층·무당층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전국을 다녀보면 국민의힘을 사랑할 준비가 된 국민들이 많다. 다만 우리가 아직 그들에게 사랑할 이유를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는 개인의 분노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에서 함께 분노하고 고통을 해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는 결국 경제다. 요즘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반도체다."
관세 협상의 레버리지도 반도체이고, AI 3강 진입도 반도체의 힘에서 가능하다. 보수의 핵심 아젠다는 국방·외교·안보·경제이며, 그 중심에 첨단 산업이 있다. 그 경쟁력을 확실히 키우는 것이 제 역할이다.
지난 10여 년의 정치 여정에서 겪은 모든 부침은 정치적 근육을 키워준 시간이었다. 정당이라는 조직이 늘 합리적일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끝까지 합리를 찾아 몸부림치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라고 믿는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와도 소신을 지키는 근육을 기르며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