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수민·서다빈 기자] 과거 여의도에서 상대 당 대표의 '단식'은 정국의 막다른 골목이자, 동시에 역설적으로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단식 농성장은 여야가 극한으로 대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예우를 갖추며 정국 해법을 모색하는 이른바 '정치의 최전선'이었지만 지금은 180도 달려졌다.
2026년 1월,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 설치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단식 농성장은 오늘날 한국 정치가 마주한 '정서적 내전'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정부·여당을 향해 '통일교 게이트·더불어민주당 공천헌금 의혹'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시작된 그의 단식은 과거 야당 지도부의 투쟁이 가졌던 '정치적 무게감'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다. 장 대표의 단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 그 누구도 공식적인 격려나 중재를 위해 농성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야당 지도부들이 단식이라는 배수진을 쳤던 명분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 명분 역시 '드루킹 특검' 수용이었다. 여야가 대선 승패의 정당성을 놓고 싸우면서 당시 분위기는 단순한 갈등 수준을 넘어 국회가 마비될 정도로 극한 대치 상태였다.
하지만 '정치적 동료의식'이 있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났다. 김 원내대표가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됐을 때, 달려온 이는 우원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다. 우 원내대표는 그의 손을 잡고 "수액 맞고 그만해라. 건강해야 싸움도 할 것 아니냐"며 단식 중단을 간곡히 권유했다. 겉으로는 삿대질하며 싸우면서도, 안으로는 상대를 '국정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살아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똑같이 특검을 놓고 벌어지는 단식 현장은 대화의 장이 아닌 '조롱과 혐오의 전장'으로 변질됐다. 이같은 변화는 정치적 중재 장치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단식이 시작되면 국회의장이나 원로들이 나서서 '출구 전략'을 짜주고, 상대 당 지도부가 농성장을 방문해 체면을 세워주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관례화된 문법이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는 이러한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무법지대가 돼 버린 것이다. 이제 단식은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증오를 확인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진영 정치의 도구'로 전락했다. 농성장 밖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임 당 지도부가 선출되면 가장 먼저 상대 당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예방'은 진영을 불문한 오랜 관례였지만 정청래 지도부 입성 후 상대 당을 향한 공식적인 예방이나 인사는 생략됐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지금은 '너는 해라. 나는 간다' 하면서 서로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라며 "이런 관례들이 다 사라졌다.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기본 상식과 도의를 저버린 것 같아 허탈하고 당혹스럽다"며 "여야가 협치해 대한민국 위기 상황을 극복해도 모자랄 판에 여야 관계가 더 악화할까 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분위기는 국회의 본령인 입법 현장의 마비로까지 이어졌다. 민생을 위한 최소한의 협력조차 불가능해졌다는 전언이다. 한 야권 소속 의원은 <더팩트>에 "계엄 이후 여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며 "여야 의원들의 협력이 필요한 법안이라 하더라도 발의를 협의하는 과정 자체가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