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정소영 기자] 통일부가 외교부 주도의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이 공개 충돌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정부가 내부 조율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가운데, 통일부가 대북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는 15일 언론 공지를 통해 '한미 협의체 관련 입장'을 내고 "외교부가 진행하는 미측과의 협의는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의 후속 협의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며 "한미 간 외교 현안 협의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동맹국으로서 필요시 국방 정책은 정부가, 외교 정책은 외교부가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며 "남북대화, 교류협력 등 대북정책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필요시 통일부가 별도로 미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대북 협상 주체는 통일부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에 통일부가 참여하는지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내용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통일부가 외교부 주도의 해당 회의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불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통일부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부처 간 불협화음을 의식한 듯 "대북정책과 관련해 유관 부처 및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한다는 통일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정부 내 대북 핵심 부처 간 엇박자 논란은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는 지난 9일 외교부가 '대북정책 전반'을 논의할 것이라며 출범을 예고한 회의체다. 당시는 한미연합훈련과 대북 제재 등을 두고 한미 고위급 당국자 간 시각차가 드러났던 때다. 일례로 정 장관은 지난달 미국 측으로부터 유화책 속도 조절과 제재 압박 유지를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 장관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정책, 남북 관계에 관해서는 주권의 영역이다. 동맹국과 협의 주체는 통일부"라며 외교부 주도의 한미 간 대북정책 조율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하지만 외교부는 11일 '양국 외교 당국'이 소통의 체계적·정례적 발전에 공감대가 있다며 정 장관의 발언을 우회 반박한 것으로 풀이됐다.
외교부는 12일 언론 공지에서도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북한 문제도 협의하기로 돼 있다며 관련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지 제목 또한 '한미 대북정책 조율 고위급 회의'였다. 이후 회의 출범 하루를 앞두고 통일부가 전격 불참을 통보한 것이다. 회의는 오는 16일 양측 수석 대표로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통일부와 외교부 간 대북정책 주도권 다툼은 '한미 워킹그룹'에 배경을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11월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가 대북정책 간 신속한 의견 수렴을 위해 꾸려진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남북 협력 사업에 따른 제재 저촉 여부를 까다롭게 심의해 남북 관계에 족쇄를 단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전직 통일부 장관들도 이날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을 중단하고, 통일부가 중심이 돼 남북 관계 재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동원·정세현·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 전 장관은 특히 "전문성이 없고 남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며 "대북정책은 통일부가 주무 부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중 관계 복원과 북러 밀착, 북한이 제외된 미 국가안보전략서(NSS),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중국 군축백서 등 북한 문제에 대한 외교적 접근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통화에서 "북한 문제는 국제적 성격이 강하다"라며 "2017년 북한의 핵 개발 완성 이후 북한 문제는 거의 북핵 문제와 동일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일부 관점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할 것이고, 외교부는 남북 관계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하지만 북핵 문제는 남북보다 미중이 관여하는 국제 현안이 돼 외교적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역할만으로는 복잡다단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중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남북협력은 우리 안에서 싸울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를 무시할 수 없다"며 "원칙적으로 국제 정세를 고려해야 하기에 외교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전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는 "통일부는 대북정책과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부처라기보다 국가안보실이나 국가정보원에서 조율된 전략과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고 수행하는 부처"라며 "현재와 같이 북핵과 제재가 핵심인 국면에서는 외교적 접근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