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북한은 1967년 3월 소련과 임업 협정을 체결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1991년 8월 러시아와 해당 협정을 재체결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벌목 노동자를 파견하고 양국이 그 생산량을 나눠 갖는 구조였다. 북한은 외화를, 러시아는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목장 내 북한의 인권 유린이 불거지자 러시아는 문제를 제기했고 1993년 말 양국 계약의 효력이 만료됐다.
러시아의 벌목장 지원도 예전 같지 않게 되면서 북한 벌목 노동자들의 탈출과 한국 귀순 시도가 이어졌다. 1994년 1월 주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은 북한 벌목 노동자로부터 수집한 '벌목장 현황 정보'를 정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1993년 7월부터 목재 운반용 화물 열차 비용을 크게 늘렸고, 벌목장에 사용될 유류도 제때 공급하지 않았다. 북한으로의 목재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석탄 생산 감소→화력 발전 차질→전력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벌목 사업 자체도 크게 위축됐다. 하바롭스크 북한 임업대표부 직원은 1993년 10월 기준 28%가량 감소했고, 1993년 11월엔 비로비잔 소재 북러 합작 목재가공 공장 근로자 500여 명이 철수해 18여 명만 남게 됐다. 체그도민 소재 벌목 노동자 6500여 명 중 4000여 명은 1994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철수할 예정이었다.
주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의 이같은 보고가 정부에 전달된 지 약 한 달여 만인 1994년 2월 13일,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 2명이 러시아 위조 여권을 소지하고 비행편을 이용해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이 외에도 중국 등 제 3국으로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이 우리 정부 공관을 찾아 귀순을 요청한 사례가 170여 명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2월 2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의 귀순 문제에 대해 "여권을 갖고 있지 않아 무국적자의 신분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 노동자 귀순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난점은 동 사안이 제3국에서 발생한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법상의 모든 문제를 고려,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자유를 찾아 우리나라로 오겠다는 북한 동포에 대해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대책을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북한이 "남한이 최근 어용선전수단을 통해 하바롭스크 벌목장의 북한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현장을 탈출해서 망명을 요청한 듯 조작하고 있다"고 반발한 지 하루 만이었다.
러시아도 북한 벌목 노동자의 귀순을 막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 측은 "러시아 내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어느 나라로든 가는 것을 제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북한 노동자들의 대거 귀순에 따른 북한 측 반발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항의할 근거는 없다"며 "러시아는 이를 인권 및 난민에 관한 국내 및 국제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들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1994년 3월 러시아 현지 매체 이즈베스티야는 "한국 외교관들이 얼마 전 2명의 북한인을 여행자로 가장해 서울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며 "러시아 기관들은 이 작전을 알고 있었지만 북한인들이 러시아 여권을 갖고 출국한 것을 막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외무부(외교부)는 정책 검토를 통해 귀순을 희망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소수일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그 규모가 상당하다면 일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따라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지만, 통치권이 북한에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기에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간주하지 못하는 괴리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합의서는 상대 체제 인정과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북한 노동자를 수용한다면 북한이 이를 합의 위반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에 외무부는 "통일원(통일부) 또는 총리실에서 관계 부처 회의를 거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정부에 전했다.
☞2편에서 계속
js8814@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