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소영 기자] 미국과 중국이 최근 발표한 핵심 안보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양국의 기조 변화가 감지되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국제무대에서 북핵 논의의 비중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칙으로 하는 우리 정부는 기조 변화와 관계없이 비핵화 목표를 견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는 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비공개 면담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것을 두고 "한미 정상은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그것이 현재 우리의 한반도 정책"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새 NSS를 발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NSS에선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이번 문서에선 제외됐다.
NSS가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설정하는 로드맵임을 고려했을 때, 한반도 비핵화 문구 삭제는 정책 우선순위 변화의 신호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 6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달 27일 공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라는 문구를 적시하지 않았다.
양측이 나란히 한반도 비핵화를 문서에서 뺀 배경에 대해 충돌 요인 관리 차원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중 전략경쟁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북핵 문제가 추가 갈등 변수가 될 수 있어 문서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다만 미중 간 전략적 목적은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보다 동북아시아 내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는 견해가 쏟아진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고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라며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우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반영됐다는 나온다. 준냉전 구도 속에서 북핵 문제를 거론할수록 북한과의 관계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판단인 것이다. 김 소장은 "중국은 원칙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찬성하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당장 직접적 압박이나 단기적 목표를 추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비핵화 목소리를 낮춰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국 외교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을 흔들림 없이 고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는 ‘E.N.D(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로 가야한다"며 "만약 한국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하지 않으면 핵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핵 포기를 안 할 것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핵 문제 관련해 제재 완화 언급을 포기하는 것을 섣불리 해서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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