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1년] 한준호·한지아·김상욱이 말하는 정치의 책임


그날 국회로 달려갔던 3人의 소회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책임·반성·대화

<더팩트>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깊은 상처를 입었던 그날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한준호, 한지아, 김상욱 의원을 만나 그날이 남긴 기억과 1년 후의 소회를 들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났다. 기습적인 계엄 선포와 이후 수습 과정에서 정부, 정치권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불확실성과 혼란의 시기를 겪었고, 이재명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후속 대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더팩트>는 비상계엄 사태가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남긴 상흔과 당사자였던 여야 의원들의 소회, 국회에 남은 숙제, 그리고 비상계엄 사태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의 민생 행보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서다빈·김시형 기자]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 국회 본청 복도에 남아 있던 소화기 자국은 지워졌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야 의원들의 몸에 여전히 남아 있다.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던 계엄군과 이들을 막기 위해 보좌진이 몸으로 부딪히던 순간 이재명 대표의 피신을 지휘하던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두려움보다 국회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앞섰던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 국민의힘 소속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에 찬성표를 던진 후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김상욱 의원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팩트>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깊은 상처를 입었던 그날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세 의원을 만나 1년 후의 소회와 그날이 남긴 기억에 대해 들었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계엄 당시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피신시키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전 과정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김시형 기자

◆한준호 "국익 중심 개헌 논의해야…내란 청산 우선"

한준호 의원은 계엄 사태가 남긴 교훈을 짚으며 개헌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삼권 분립이 한 독재자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치권이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당리당략을 떠나 국익 중심으로 개헌 논의를 하고 양당이 이견을 빠르게 좁히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계엄 당시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피신시키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전 과정을 주도했다. 헌정기념관 앞 숲을 지나 지하 통로로 본회의장까지 숨가쁘게 이동한 직후 계엄군은 곧바로 해당 통로를 봉쇄했다.

그는 "당시 지도부는 윤석열의 비상식적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밤 10시 반에 갑자기 중대 발표가 있다길래 '술 마실 시간에 무슨 담화냐' 싶었고,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감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본청 앞에서 계엄군과 당직자·보좌진이 대치하던 장면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밖에서 '문이 막혔다', '뚫렸다'는 소식이 계속 들어왔고, 군이 본회의장까지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성이 나는지 계속 귀 기울였다"고 기억했다.

내란 청산 과제로 국민의힘의 책임 있는 자세를 꼽은 그는 "당시 대통령을 옹호했던 세력 모두 지금이라도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며 "계엄 주도 세력을 법적으로 단죄해야 국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 일부가 유력 대선주자 제거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기존 사법체계만으로 내란 재판을 진행한다면 어떤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라며 "내란전담재판부를 신속히 설치해 내란 청산을 마무리해야 민생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한지아 의원은 계엄 소식을 접한 뒤 공포나 두려움보다 지금 당장 국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한지아 의원실

◆한지아 "국힘, 집권여당 부족함 직시하고 사과해야"

한지아 의원은 계엄 이후 트라우마를 겪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상처보다 '당의 트라우마'를 먼저 언급했다.

의사 출신인 그는 "나는 의사다. 의학에서는 트라우마 극복의 시작은 그 사안을 직시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비상계엄에 대한 그날 집권여당으로서의 부족함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당도 치유의 길로 갈 수 있다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아직도 12·3일 작년 그날에 머물러 있다"며 "국민께 사과를 하고, 상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이제 미래를 설계하는 유능한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트라우마도 남아있었다. 개인적 후유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계엄 이후에는 모든 의원들이 더 외로워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하지만 외로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계엄 소식을 접한 뒤 공포나 두려움보다 "지금 당장 국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계엄 포고령을 읽는 즉시 그것이 위법·위헌적 조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계엄 사태가 남긴 가장 큰 상처로는 국민이 국가라는 울타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직접 느끼게 된 점을 꼽았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그 순간 자체가 이미 깊은 상처였다는 진단이다.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정치는 완벽할 수 없지만 정치는 책임질 수는 있다. 책임을 지는 순간,국민들께서는 우리를 다시 보기 시작하실 것"이라면서 "국민의힘은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 사과는 정당의 패배가 아니라 건강한 야당이 지금의 민주당을 견제하고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계엄 이후에도 여야 정쟁이 극단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의원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의석수가 많은 민주당은 쟁점 법안들을 협치와 대화 없이 통과시킨다"며 "이런 정치적인 환경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했는데도, 협치의 실종은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어떤 정권이 집권하든, 어떤 여야 구도든,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은 어쩌면 국회"라며 "1년이 지난 지금 여야 모두가 극단의 목소리가 아닌 상식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고, 그 상식의 목소리가 구현되는데 함께 대화하고 협치를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상욱 의원은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뒤를 부탁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 김시형 기자

◆김상욱 "마이웨이? 최소한 '불씨' 남기려…계엄 막은 건 국민"

김상욱 의원은 계엄을 막아낸 힘이 결국 국민에게서 나왔다고 되짚었다. 그는 "계엄 이후 6개월은 말 그대로 간절함의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는 사실상 붕괴됐고 국민들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며 "무엇보다 계엄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몸으로 지켜내 모범을 보여줬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마이웨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김 의원에게 그날의 선택은 고집이 아니라 반드시 막아야 했던 순간이었다. 계엄 해제 표결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한 명이 아쉬웠고, 단 1분이 급박했다. 그래서 민주당을 향해 '의석 많다더니 왜 절반도 못 채우냐'고 소리쳤다.

설령 표결을 해도 군이 총을 쏘고 체포하면 그만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국회는 명분을 세우고, 민주주의를 다시 살릴 최소한의 '불씨'를 남겨야 했다.

그는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본회의장으로 가면 죽는다', '당사로 가야 산다'는 말까지 나돌았다"며 "그러나 계엄할 사유가 없고 포고문에도 반헌법적 요소가 드러나 있는게 명백한 상황에서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당 스스로 내란에 관여한 사람들을 찾아 모두 징계·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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