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국민의힘이 검찰의 대장동 사건 1심 항소 포기와 관련해 총공세를 벌이는 가운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 지도부의 활동보다 한 전 대표의 메시지가 더 강한 파급력을 보이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이번 기회로 정치적 입지를 되찾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무부 장관 출신 한 전 대표는 대장동 항소 포기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여 년 간의 검사 생활을 십분 활용해 대여 투쟁의 전면전에 나선 모습이다.
한 전 대표는 12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라면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 등 관련자에 민사소송으로 걸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외압은 '상수'지 '변수'가 아니다"면서 "이번 사태는 권력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잘못된 원칙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 전 대표는 "검찰이 '당연히' 항소해야 하는데도, 검찰이 항소 안 하고 있다"며 사실상 이번 '항소 포기' 사태를 예고한 데 이어 "정권은 유한하다"고 경고했다. 결국 검찰이 시한 내 항소하지 않자 그는 "11월 8일 0시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며 관련자들의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7개월 앞둔 현재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 사태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인물이 한 전 대표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 전 대표의 작심 발언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제1야당 지도부의 존재감이 오히려 희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이날 통화에서 국민의힘의 대응을 두고 "한 전 대표보다 하루 반 정도 늦었다"며 "장 대표가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제1야당 대표로서 여당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결기를 가진 행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당 대표의 일정만 수행하면서 '비상'과 '일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대규모 규탄대회에서 당원들을 향해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라고 외치며 당내 결속을 도모했다. 앞서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의혹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내란 선전·선동에 가담했다는 의혹으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체포했다.
장 대표는 이날 규탄대회에서 한 발언의 취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해당 발언은 명백히 누구도 이의 제기할 수 없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며 "무리하게 체포하고 압수수색하는 것은 특검의 무도한 수사"라고 직격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과거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내란 선전·선동 혐의로 수사받는 인물인데 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이날 <더팩트>에 "장 대표의 '황교안' 발언은 다소 뜬금없었다"며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호남 민심 행보를 병행하면서도 강성 지지층과의 연대를 끊지 않으려는 행보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한 전 대표와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장 대표가 여론을 주도하지 못한다면 대여 투쟁의 주도권을 한 전 대표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당내에서도 한 전 대표의 메시지가 당의 공식 대응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여론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항소 포기 사건도 한 전 대표가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냈고, 우리 당은 따라가는 모양새"라면서 "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오는 것보다도 현재 당의 화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도부가 삭발·단식 등 극단적인 투쟁 방식도 불사해 여론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지도부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