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정소영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회동이 불발된 뒤, 미국이 대북 제재 카드를 잇달아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제안을 김 위원장이 거절한 가운데 이뤄진 조치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이처럼 북미 대화와 관련된 움직임은 주목을 받는 반면, 남북 간 접촉 가능성은 희미해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북미 대화를 계기로 남북 관계 복원을 도모하고 있지만 북한은 '완전 단절 실체화'에 돌입했다.
◆트럼프, 북미 회동 무산 뒤…2기 재임 중 첫 대북 유엔 제재 추진
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의 불법적인 자금 형성 등에 관여한 개인 8명과 기관 2곳을 특별제재대상(SDN)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북한 은행가를 포함한 조선만경대컴퓨터기술회사, 류정신용은행 등이 그 대상으로 해외 파견 노동자의 외화 송금과 세탁을 주도한 혐의다.
미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오르면 미국 내 모든 자산이 동결된다. 아울러 미 금융시스템과 관련된 거래 참여가 불가하고, 제재 대상과 거래한 제3자도 동일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위해 이러한 대북 제재 회피 방식으로 관련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유엔 차원에서 대북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라 수출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을 실은 선박들이 중국으로 운송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유엔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가 관련 선박 7척을 즉시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기상 공교롭게도 미국의 잇단 제재 카드는 북미 깜짝 회동이 불발된 뒤 제시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을 계기로 북미 회동을 거듭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그만큼 이번 미국의 제재는 김 위원장을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유인하려는 수단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김 위원장에게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도 대북 제재 문제는 김 위원장이 북미 회담과 관련해 고려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미 재무부 차원의 제재 지정이 통상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북미 대화가 좌초될 만한 리스크는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가 촉구한 북한 관련 신규 유엔 제재의 경우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모두가 찬성해야 하는데, 최근 북중·북러 관계를 고려해 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미 대화 계기 남북 복원 모색 중에…"北, 완전 단절 실체화"
정부는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하고, 이를 계기로 단절된 남북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겠단 입장이다. 다만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기조 유지를 넘어 '완전 단절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개최된 국방정보본부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완전 단절을 실체화했다"며 "적대적 두 국가 고착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 간 대화 접촉을 거부하고 군사분계선(MDL)의 국경선 작업을 지속·강행, 남북이 적대 관계임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다"고 이들 의원은 전했다. 또 "비무장지대(DMZ)에 도로로 표현할 수 있는 불모지 구축과 철책 3단, 방벽 구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정부로서는 고심되는 대목이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전날 국회 정보위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조건이 맞춰지면 접촉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또 내년 3월이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정부는 '조문 외교' 등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분위기다. 전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사망에 조의문을 발표했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애도 메시지를 내놨다. 김 전 위원장과 남북 대화 계기마다 여러 차례 만났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대북 특사를 자청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관련한 북한의 반응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북미 사이에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긴 어렵다"며 "어떤 역할을 할지보다 북미 회동의 의미를 파악하고, 회동 이후 미국이 북한의 핵을 인정했을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