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하린 기자] 환경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환경분쟁조정제도가 법의 취지와는 달리 늑장 행정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화 시스템이 도입됐음에도 ‘즉시 착수’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경북 안동·예천)이 중앙환경분쟁조정피해구제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접수된 환경분쟁조정사건 546건 중 120건(21%)이 접수까지 10일 이상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분쟁조정피해구제법' 제30조는 위원회가 환경분쟁조정 신청을 받으면 ‘지체 없이 조정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는 신청서 보완 절차 등을 이유로 접수를 미루는 관행을 반복하면서 법적 의무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올해 1월 전자 접수 시스템이 전면 도입된 이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8월 온라인으로 접수된 39건의 사건 가운데 즉시 착수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절반가량 (20건)은 4일 이내, 일부 사건은 최대 17일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분쟁조정사건은 △축사 악취로 인한 생활 피해 △건설공사 소음·먼지 피해 △오염수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사안이 대다수다. 이에 따라 접수가 지연되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피해자가 장기간 구제받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의원은 "법이 명시한 ‘지체 없는 착수’는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라면서 "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 태만이자 제도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환경분쟁조정은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직결된 핵심 제도인 만큼, 위원회는 즉시 착수 원칙이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내부 절차와 운영 전반을 면밀히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