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을 계기로 미·중 정상과 만나는 중요한 외교전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제 협력 강화를 기대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외교 성과를 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정쟁의 화수분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이 대통령은 2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다음 달 1일에는 시진핑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최대 관심사는 미국과 교착 상태인 관세 협상의 타결 여부다. 정부는 국익 우선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3500억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둘러싼 양국의 쟁점이 해소되지 않아 타결 기대감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진행된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두고 "투자 방식, 투자금, 일정, 손실 분담 및 투자 이익 배분 방식 등이 모두 쟁점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연이 꼭 실패를 뜻하는 건 아니"라며 "당연히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한국에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석 달째 난항을 겪는 관세 후속 협상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야당의 공세가 불가피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관세 협상 문제를 가정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고 잘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만약 (정부가)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못하는 대로, 어떠한 타결이 있다면 국익을 지킨 것인지 철저하게 따지고 비판하는 것이 야당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11년 만에 국빈 방한하는 시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도 야당이 시선을 두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 등을 두고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 대통령은 냉랭한 한중관계를 복원하고 경제 협력 강화를 위해 민감한 현안을 의제 테이블에 올리기가 껄끄러운 상황인데, 보수당은 주권 침해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잠수부까지 투입해 불법 구조물을 세우는 등 노골적으로 '서해 공정'을 진행하는 데 대해 정부가 눈치를 보면서 해양주권을 방기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해 왔다. 중국의 서해 불법 구조물 문제나 한한령 해제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실질적 해법에 담긴 합의에 이르기가 어려운 현안이라는 점에서 야당의 공세 요소로 꼽힌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시 주석을 만나 캄보디아 사태 관련 우리 국민을 향한 중국인 범죄 단체의 범죄 행각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죄의 상당수는 중국계 폭력조직과 연계돼 있기에 중국의 수사 공조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인이 국제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을 정부가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캄보디아 등지에서 발생하는 온라인 스캠 등 초국가적 범죄에 대해 "아세안 각국 및 아세안 차원에서의 긴밀한 형사·사법 공조를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관련 범죄에 관한 의제가 시 주석과 정상회담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지만 중국 측의 수사 공조를 약속할지는 미지수다.
어떤 식으로든 이 대통령의 외교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필연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당은 조그마한 성과도 크게 조명하며 높이 평가할 것이고 야당은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는 게 정치적 구조"라며 "여야가 내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APEC 이후 외교 성과를 둘러싼 여론전은 예고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