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오후, 경기 시흥시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10대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의 옥상, 26층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철제 계단을 설치하던 중 계단 한쪽이 이탈해 50대 하청 노동자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조차 기본적인 안전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양중기를 활용한 중량물 취급작업은 건설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공정 중 하나다. 산업안전보건 규칙은 이미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관리감독자를 지정해 유해·위험을 방지하도록 하고, 중량물 작업의 경우 반드시 작업계획서를 작성해 현장에 적용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작업 지휘자를 통해 전 과정을 통제하고, 일정한 신호체계를 확립해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 현장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사고는 결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충남 아산의 한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철골빔을 크레인으로 인양하던 중 고정 장치가 풀리며 근로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두 달 전인 7월, 부산의 한 플랜트 공장 증설 현장에서는 크레인이 운반하던 대형 파이프가 흔들리다 추락해 하청 근로자가 사망했다. 대형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뿐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실수나 일시적인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안전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우리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DGUV(산업재해보험공단) 규정을 통해 양중기와 중량물 작업을 매우 세밀하게 관리한다. 모든 중량물 인양작업은 사전에 ‘리프팅 플랜(Lifting Plan)’을 수립해야 하며, 그 계획은 작업 지휘자와 안전담당자가 반드시 공동으로 승인한다. 작업자는 DGUV에서 지정한 특수 교육 이수자만 참여할 수 있고, 일정 중량 이상은 반드시 이중 체결 장치나 안전핀으로 고정해야 한다.
또한 독일은 신호수 제도를 철저히 운영하는데, 신호수는 단순히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으로서 현장에 상시 배치된다. 특히 독일 현장에서는 "사람의 감에 의존한 작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크레인 센서와 하중 감지 시스템을 통해 기계적으로 위험을 통제한다. 이처럼 독일은 기술과 제도가 함께 작동하는 구조적 안전망을 통해 중량물 사고를 최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야 할 관리감독자의 역할이 형식적 절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작업계획서는 책상 위 문서에 불과하고, 작업 지휘자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며, 신호체계조차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근로자들은 철제 계단과 철골, 대형 파이프 같은 중량물이 언제 흉기로 변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스템 안전을 현장에 정착시켜야 한다. 관리감독자는 실제로 위험을 통제하는 실질적 책임자가 되어야 하며, 작업계획서는 반드시 현장에서 실행되는 문서가 되어야 한다. 작업 지휘자는 전 과정을 통제하며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고, 신호수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또한 위험성 평가와 작업 전 안전교육을 통해 근로자 모두가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구역 출입 통제와 보호구 착용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더 나아가 대형 건설사는 독일처럼 센서, 자동 체결장치, 모니터링 시스템과 같은 기술적 장치를 적극 도입해 사람의 실수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량물 취급작업에서의 사고는 더 이상 불가피한 운명이 아니다. 이미 수차례 경고되고 법으로 명문화된 조치가 지켜지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예견할 수 있는 비극이다. 안전은 규정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독일이 보여주듯,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량물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우리도 더 이상 같은 이유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안태 現 울산안전 대표이사 前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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