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국감" 오명만…감시는 '실종'


'조요토미 희대요시' 파문…막말·고성 난무
"선거 운동 같다" "동물 국회" 거센 비판 나와

반환점을 돈 국정감사가 혹독한 평가를 마주했다. 행정부 감시 기능이 사실상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오른쪽)을 향해 항의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정감사(국감)가 반환점을 돌았지만 헌법이 입법부에 부여한 행정부 감시 기능은 사실상 실종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피감기관에 대한 정책 검증보다는 정쟁과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면서 "역대 최악의 국감"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주요 상임위 국감마다 정책 논의보다는 욕설과 고성 등 여야 간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과거 국감에서 종종 등장하던 '스타 정치인'의 존재는 자취를 감췄고,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쇼츠형 국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큰 논란은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나왔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대법원의 일부 재판 결과를 들며 '친일 사법'이라고 비판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얼굴에 일본식 상투를 합성한 사진을 들어 보였다. 사진 아래에는 '조요토미 희대요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최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판결은 조 대법원장이 취임 전에 이미 선고된 것으로, 사실 관계조차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때아닌 '의원 딸 결혼식'이 도마에 올랐다. 국감 기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의 딸 결혼식이 치러지면서 피감기관의 화환을 받고 청첩장에 '신용카드 계좌 결제'까지 가능하게 해놓은 것이 논란이 됐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이를 언급하며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정치인 결혼식은 보통 지인만 초대하고, 화환·축의금은 사양하는 것이 예의"라고 비판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딸이 결혼식을 주도했다. 문과 출신인 제가 매일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암호 통신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며 국감 기간 질의 내용을 준비하느라 딸의 결혼식에는 신경쓰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를 잃고 정치 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사진은 김장 국민의힘 의원이 국감에 앞서 최민희 위원장 자녀 결혼식과 관련해 자료제출 요구를 하고 있논 모습. /남윤호 기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감이 본래 취지를 잃고 의원들의 '정치 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야당 소속 한 재선 의원은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최혁진 의원이나 과방위에서 의원들이 보인 행태는 국민의 국회 불신을 더 키웠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도 "역대 최악의 국감"이라면서 "국민 보기가 부끄럽다. 국회의 횡포이자 폭력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동물 국회"라면서 "완전히 엉망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피감기관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국감에 참석한 한 법사위 피감기관 관계자는 최혁진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완전히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다수당이 횡포를 부리며 '사법부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며 "도를 넘는 공격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양당 간 극한 대립으로 인한 소통 부족이 '최악의 국감'을 만든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책 검증과 대안의 장이 돼야 할 국감이 정쟁 중심으로 변질되면서,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것이다.

배병인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국감을 보면 국회의원들의 자질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당이 정책에 대해 뚜렷한 문제의식 없이 일종의 선거 운동하듯 하고 있다"며 "대단히 꼴사나운 모습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각자 정당들이 자기 진영의 어젠다에 너무 매몰돼 있어 상호 간의 소통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 내 진영 갈등이 너무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계엄과 탄핵 이후에 더욱 고조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본분을 놓치면 안 된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는 정쟁을 뒤로하고, 정책에 대한 관리·감독을 성실히 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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