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폐기…22대 국회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손볼까


표현의 자유와 개인 프라이버시 충돌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법안 발의돼
"쟁점 많은 법률"…논의 점화 미지수

22대 국회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할지 관심이 쏠린다. 표현의 자유 보호를 위해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전세계적 흐름이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사실을 말해도 처벌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개인의 프라이버시라는 기본권이 충돌하면서 존폐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22대 국회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손볼까.

현행 형법상 허위사실은 물론, 단순히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도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형사처벌 대상이다. 쉽게 말해 허위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다만,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인터넷(사이버) 명예훼손죄'는 명예훼손죄보다 처벌이 더 세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엄격한 법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형법은 최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특히 공익과 무관한 폭행, 불륜, 임금체불, 괴롭힘 등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이 사실관계를 공론화하면 되레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자칫 적반하장격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21대 국회에 이어 다시 대표발의했다. /남윤호 기자

고소·고발 등을 남발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24 범죄백서'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범죄 건수는 최근 5년 동안 △2019년 1만2081건 △2020년 1만4294건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2021년 7008건 △2022년 8022건 △2023년 7910건이었다. 그러나 2023년도 기준으로 전체 사이버범죄(정보통신망법) 죄명으로 따졌을 때, 명예훼손은 58.3%로 가장 높았다. 이는 △기타 21.4%(2902건) △정보통신망침해 13.6%(1852건) △음란물유포 등 6.6%(899건)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치론자들은 의사 표현행위가 타인에 대한 사적 제재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고, 타인의 명예외 신용을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 적시까지 형사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고, 표현의 자유 위축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공적 인물과 사안에 대한 입막음 목적으로 소송이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폐지 이유로 든다.

다만 앞서 헌법재판소는 2021년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이며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그 한계로 선언하는 점, 사적 제재 수단으로 명예훼손을 악용하는 것을 규제할 필요성 등을 이유로 형법상 처벌이 정당하다고 봤다. 개인 명예의 법익 보호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당시 반대의견을 냈던 헌법재판관(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들은 감시와 비판의 객체가 되어야 할 국가·공직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되면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 사실 적시 표현행위로부터 외적 명예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어도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반론보도 청구,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언론개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은 악의적인 목적의 허위 보도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더팩트 DB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19대 때부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번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무분별한 고소·고발 남발을 줄이기 위해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개정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이번 국회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슷한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사회적 약자가 공적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조차 제약받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론화될지는 미지수다. 추석 연휴 이후 돌입하는 국정감사 일정과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을 고려했을 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논의에 불이 붙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야당 일각에서 신중론이 제기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진실을 주장한다더라도 한 개인의 평판이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심할 경우 타인이 사회적으로 매도된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이자 상식일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더라도 형사 처벌 등을 통해 제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명예훼손죄는 쟁점이 많은 법률"이라며 "완전히 폐지할지 형사처벌 수위를 낮출지 등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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