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청춘<상>] '쉬었음' 너머 '단절'…고립·은둔청년 54만 명


​​​​​​청년 5.2% 고립·은둔 상태
사회적 비용 연간 약 7조 원
개입 신청 1년 만에 240% 폭증
전담기관은 '과부하' 상태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립·은둔 청년은 전국 약 54만 명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시스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방 안에 갇힌 지 3년.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건 아니지만,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매번 두려움 앞에 가로막힙니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고 싶지만, 문을 여는 그 한 걸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1. 37세 신용범(가명) 씨는 2018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생업을 중단해야 했다. 일을 멈춘 그에게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찾아왔다. 2년여의 긴 재활 끝에 퇴원했지만, 이번엔 코로나19가 닥쳤다. 사람을 만날 통로가 막히자 자연스레 방 안에 갇힌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법을 점차 잊어버렸다.

#2.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28세 박현진(가명) 씨에게 새로운 대인관계는 두려움이었다. 대학 진학과 군 복무, 졸업으로 소속이 바뀔 때마다 기존 관계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취업 과정에 접어들며 그의 사회적 연결망은 완전히 끊겼다.

#3. 33세 서준영(가명) 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이어가던 생계마저 끊기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절망에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집을 '감옥'이라 표현한 그는 은둔 생활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스스로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을지 모른다며 두려움을 털어놨다. 그가 방 문을 다시 열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고립과 은둔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립·은둔 청년은 전국 약 54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고립·은둔 기간은 1~3년 미만이 26.3%로 가장 많았고, 5년 이상도 18.8%에 이른다.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7조493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무조정실이 올해 3월 발표한 '2024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9~34세 청년 응답자 1만5098명 중 약 5.2%가 고립·은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이유로는 취업의 어려움이 32.8%로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 문제(11.1%), 학업 중단(9.7%)이 뒤를 이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 개념만으로는 이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생활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빈약하거나 스스로 고립감을 느낀다면 누구나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청년 고립·은둔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만1357명 중 36.2%인 7726명이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 위해 평일에 매일 외출한다'고 답했다.

추정치 이상의 '숨은 청년'도 다수 존재한다. 고립이 심각할수록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복지체계만으로 이들을 발굴하기엔 역부족이다.

고립이 심각한 청년일수록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기존 복지체계만으로 이들을 발굴하기엔 역부족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더팩트 DB

각자의 고립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가 깃들어 있다. <더팩트>가 지난달 30일 만난 용범 씨는 만 30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생업을 중단하자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찾아왔고, 약 2년 간의 재활을 마친 뒤 퇴원했지만 코로나19가 시작돼 그는 방 안에만 머물러야 했다. 외부와의 단절이 길어지면서 대인기피증은 점점 심해졌다.

용범 씨는 "사람들에게 제 사연을 얘기하면 '나약해서 그렇다', '열심히 안해서 그렇다'며 편견 섞인 시선을 받는다"며 "고립 사연도, 계기도 모두 다른데 사회에서는 고립 청년들을 일률적으로 '문제 있는 청년'이라고 바라보니 자연스레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됐다"고 말했다.

준영 씨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약 3년 간 고립 생활을 겪었다. 그는 "코로나 이전에는 사회활동을 하다가 잠시 쉬어도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일이 완전히 끊기면서 고립하게 됐다"며 "저를 불러주는 곳도, 필요로 하는 곳도 없다고 느껴 피신하듯 은둔을 선택하게 됐고, 나오고 싶어도 타이밍을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뉴스에 쏟아지는 각종 이상동기범죄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고도 했다. 준영 씨는 "3년 동안 감옥 같은 생활을 하면서, 이 생활이 더 길어지면 나도 혹시 범죄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분출할 곳이 없어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려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재고립'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이들 모두는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현진 씨는 "사회가 청년들에게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용납하지 않는 듯 냉정하게 대할수록, 우리는 더 움츠러들어 다시 방 안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 고립·은둔 청년 전담 기관인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올해 대면 사업 프로그램에는 총 4445명의 청년이 몰리며, 지난해보다 신청자가 240% 이상 급증했다.

<중>편에 계속

rocker@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