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국회 기록물 관련 업무를 전담할 국회기록원 설립 근거를 담은 '국회기록원법'이 졸속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에 차관급 조직이 신설되는 사안임에도 법안 제안부터 상정·처리까지 불과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여당은 국회 기록물 관리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여야 합의나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 24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기존 국회도서관 산하 국장급 조직인 '국회기록 보존소'를 확대 개편해 독립적인 기록물 관리 기관인 국회기록원을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 인원에서 45명 증원해 연평균 총 75억원의 제정이 소요될 예정이다.
국회의장 소속으로 분류돼 국회 소관의 기록물을 생산·분류 및 보존·폐기 등을 전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전직 국회의원을 포함해 각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모든 기록물을 수집 및 관리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7월 23일 국회운영위원회에 법 제정 의견을 제출했고, 국회기록원법은 같은 달 29일 운영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운영개선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지난 24일 운영위·법사위 전체회의에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수석 전문위원의 체계자구검토보고서에는 '개정안의 체계와 자구에 대해 검토한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보았음'이라는 단 한 줄만이 적시됐다.
정치권에서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국회의 조직을 변화시키는만큼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충분한 논의가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 국회기록원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와 국회 소속 기관장들만 참석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운영위 회의록을 보면 한 시간 남짓만 관련 법 논의가 이어졌다.
당시 회의에서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법안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유상범 의원 역시 "지금까지 합의되지 않고 의결해 처리된 적이 없다"고 반발했지만, 문진석 민주당 의원은 "논의하고 이견이 있으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하고 이의제기했지만, 소위원장인 문 의원이 국회법 제71조를 근거로 거수 표결해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법안을 일방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법안이 통과된 취지를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기관이 국회의장 산하에 있다는 점에서 독립성에 의문도 제기한다. 운영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이날 <더팩트>에 "이 법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의장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아는데, 기록이란 늘 역사에 남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초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조직 비대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디지털 시대에 기록 관리를 위해 대규모 인력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라면서 "중복 자료 양산으로 인해 행정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기존 조직의 효율적인 재배치 노력 없이 차관급 조직 신설을 밀어붙이는 것은 예산, 즉 혈세 낭비"라며 "일자리 창출은 선거 표심(票心)과 연결이 되겠지만 국가는 병들어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차관급 자리 신설이나 예산에 관련해 일부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며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물밑 접촉하며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