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대선 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회동 의혹을 제기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 요구를 이어가는 더불어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사법부 수장이 얽힌 의혹을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역풍이라는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기도 어렵다. '정치 공작'이라는 범보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개연성이 커지며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19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최초 (의혹을) 거론하신 분께서 해명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라며 "경위나 주변 상황, 그런 얘기를 했던 베이스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개인 의원의 의혹 제기일뿐 당 차원에서 논의된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다. 해당 의혹은 지난 5월 친여 성향 유튜브에서 최초로 제기했고 서영교 의원이 국회에서 언급했다. 크게 이슈화되진 못했다.
그러다 16일 대정부질문에서 부승찬 의원이 같은 의혹을 거론하면서 공론화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한 전 총리와 등과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과 관련해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사퇴와 특검 수사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객관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서 의원이 "이게 사실인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원출처 유튜브에 이어 재공개됐던 음성의 진위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범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과 한 전 총리의 회동이 본질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이례적으로 신속했던 이 대통령의 파기환송심과 내란재판 지연을 문제 삼고 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언론은 '조희대 회동설'로 쓰지만 본질은 '이재명 죽이기 재판 모의 의혹 사건'이 핵심이며 번갯불 파기환송 대선 개입 시도가 진짜 이름이다. 또한 조희대 사건 본질은 내란재판 지연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는 조 대법원장과 한 전 총리의 부적절한 만남 의혹이 '진실 공방'으로 흘러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와 닿아 있다. 대법원이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는 건 명백한 선거 개입이며, 내란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해 조 대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정청래 대표가 이날도 회동설을 뒤로한 채 조 대법원장에게 결자해지를 언급하며 거듭 사퇴를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조 대법원장 회동설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대중의 관심은 진위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관련 의혹의 파장이 커지면서 조 대법원장에 대한 책임론이 한 전 총리와 회동설에 묻히는 양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민주당 일각에서 계속 회동설을 주장한다면 근거 부족으로 '가짜 뉴스' 프레임이 강화될 공산이 크다. 구체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진원지가 불투명한 '카더라' 식의 의혹 제기는 정치공세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자칫 '역풍'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보수 진영의 역공이 거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확인되지 않은 제보를 내세워 대법원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려 했다며 강하게 몰아세우고 있다. 회동설 의혹을 제기한 서영교·부승찬 의원에 대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할 사안이라며 즉각 고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장동혁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의 공작 정치와 독재 음모, 사법 파괴에 대해서 총공세를 할 시간이 됐다"라며 여론전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