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통일부가 매년 발간하던 '북한인권보고서'를 올해는 제작하지 않는 방안으로 검토 중이다. 북한이 인권 문제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점을 고려하면 이재명 정부가 전개 중인 대북 유화책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자료로 발간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방안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보고서 발간 이후 새로 수집된 진술이 많지 않다는 걸 고려하고 있다"며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당국자는 매년 200여 명의 탈북자 중 대부분은 제3국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체류했고, 북한에서 국내로 곧바로 넘어온 이들은 연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2025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의미 있는 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인권보고서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2018년 이후 매년 발간됐다.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소(하나원)에 입소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증언을 근간으로 써 내려간 북한 인권 침해 기록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3급 비밀로 지정하고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 처사였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을 널리 알려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2023년과 지난해 북한인권보고서를 국문판·영문판으로 일반에 최초 공개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매우 복잡하다"며 "개별 사안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지만 북한 대중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도 역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을 아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 인권을 북한 체제 공세 수단으로 쓰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간 인권 문제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대북 유화책을 확대 전개하고 있는 점을 미뤄보면, 보고서 미발간 검토 역시 북한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인권보고서를 제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부 입장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북한인권보고서는 비공개로 분류됐지만 매년 작성되긴 했다. 올해 실제로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는다면 201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가 오랜 기간 협력한 사안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접근이 정부 출범 때마다 달라진다면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북한인권결의는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23년 연속 채택된 바 있다.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는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관계 해결을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포기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헌법상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마다 입장이 분명히 있고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우리가 인권을 포기한다면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도 '한국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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