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호영 기자] 광복 직후 귀국하려던 재일 한국인을 태운 채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이 80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조사는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조사를 위해 정부가 일본에 관련 자료를 추가로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상식·김준혁·이수진·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우키시마호 폭침, 80년간 잃어버린 기억 : <승선인 명부 분석과 향후 계획>'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선 우키시마호의 승선인 명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우키시마호는 화객선(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수송하는 배)이었으나 일본 해군에 징발됐다. 사건 당시 탑승자 대부분이 강제노역 피해 노동자들로 알려졌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같은 달 24일 교토부 마이즈루항에 기항 중 선체 하부 폭발로 침몰했다.
현재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설치한 기뢰로 인해 폭침했다고 밝힌 것에 반해, 생존자와 유족들은 일본의 계획적인 범죄라고 주장한다.
파악된 피해 규모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송환자 3725명과 승조원 255명이 탑승했고 이중 조선인 524명과 승조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우키시마호에 탑승한 인원은 약 7000명, 사망자도 3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피해자 유족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1992년에는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2004년 패소가 확정됐다.
우리 정부는 2005년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뚜렷한 폭발 원인이나 사망자 수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수사를 중단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가 우키시마호 침몰로 사라졌다고 주장했으나, 지난해 5월 일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후세 유진 씨의 정보공개 청구로 명부를 공개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일본에 자료를 요청했고 지난해 9월 19건, 10월에 34건의 명부를 확보했다. 올해 3월에는 일본 정부 내부 보고 자료 22건을 받았다. 정부는 올해 6월 총 75건에 달하는 자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입력을 완료했고, 올해 말까지 최종 인원을 추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서인원 우키시마호 명부분석팀장은 "일본이 제공한 1차 자료 2차 자료에 1만8000명 정도의 명단이 있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표기 오류와 중복자에 대한 교차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며 "최종 인원을 추산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재단은 오는 13일 유족을 대상으로 조사 중간 경과 보고를 할 예정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후세 씨는 "저널리스트로 조사를 하면서 일본 후생청에 1945년에서 55년 사이에 촬영된 약 650건의 관련 공문이 있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후세 씨는 그러면서 "저널리스트 개인 자격으로 일본 정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있지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며 한국 정부의 역할을 촉구했다.
이윤숙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과장은 "정부에선 추가 자료를 요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으나 어떠한 자료를 요구해야 하는지 그 목록을 알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며 "650건의 자료가 구체적으로 있다고 하시니, 우선순위를 정해 알려달라"고 답했다. 이어 "행안부에서 적극적으로 외교부에 건의해 일본에 자료를 요청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우키시마호 사건 피해자 유족도 참석했다. 우키시마호에서 생환한 후 10여 년 전 사망한 최일성 씨의 딸 영례 씨는 부친이 남긴 "너는 이 이야기를 잊지 마라. 그 배에서 죽어간 사람들, 누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다 사라진다"는 말을 전하며 사건에 대한 관심과 조사 진행을 촉구했다. 최 씨는 발언 도중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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