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경제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 내 법안을 신속 처리하겠다고 못박았다. 배임죄 적용 확대 등 재계의 부담을 놓고도 법안을 우선 시행한 뒤 보완 방안은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입법 속도전에 방점을 찍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6단체와의 간담회에서 "기존 제도가 바뀌는 데 다소 부담이 있다고 해도 상법이 개정되면 주식시장이 다시 한 번 뛰어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법 개정 이후) 우려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얼마든지 제도를 보완하고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은) 주식시장의 선진화를 위한 오랜 과제인 만큼 이제는 이 과제를 실현하면서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그간 회사에 한정됐던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해 이사들이 소액주주의 이익도 적극 고려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밖에도 집중투표제를 강화해 소액주주들이 사외이사 선임 등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감사위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해 소액주주들의 물리적 참여 장벽을 해소하고,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해 독립성을 명확히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민주당은 이에 더해 대선 직후인 지난 5일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을 추가한 상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시행 시기도 기존 1년 유예에서 공포 후 즉시로 앞당겼다.
경제계는 개정안이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나아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간담회에서 "주식시장 활성화나 공정한 자본시장 여건 조성에는 경제계도 이견이 없지만 지나친 소송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 경영권 보장 장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배임죄 적용 확대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이사가 특정 주주만의 이익을 고려한 판단을 했을 경우 배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져 배임죄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상법상의 의무 확장과 형법상 배임죄 적용이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3%룰을 두고는 경영권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민주당은 경제계의 부담 완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김남근 의원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등에 대한 우려는 실질적으로 법원에서 통제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배임죄나 소송 남발 우려 등은 법안에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입법 보완 시점은 법안 통과 이후로 못박으며 '선 입법 후 보완' 방침을 재확인했다. 오기형 의원은 "기업들의 입장에서 형사처벌이 너무 과하다는 비판을 다양하게 듣고, 하반기에 특이사항을 논의하면서 정기국회 과정에서 처리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13일 당 차원에서 주식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을 논의할 '코스피 5000 비상설특별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상법 개정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코스피 5000 시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후 2~3주 내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민주당이 속도전을 펼칠 명분은 충분하다.
당초 기업 경영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던 국민의힘도 이날 "주주권 침해 문제와 시장 상황 변화 등을 고려해 법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하면서 민주당의 입법 속도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 초기에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지 않으면 나중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집권 초반 개혁에 대한 반발을 의식하기보다 책임있는 성과를 내는 데 무게를 둔 결정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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