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나는 요즘 '마크맨'이라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따라다니며 그의 모든 발언과 행동, 표정과 호흡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게 내 일이다. 기자로서 그의 말을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지만, 또 한편에서 그 말들이 진심이기를 바라는 모순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5월 초여름, 쨍한 햇살이 아스팔트를 달군다. 수천 명이 모인 유세장은 거대한 바다처럼 출렁이고, 모든 시선은 무대 위 한 점으로 수렴한다. 이재명 후보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우는 순간, 나는 그의 모든 말을 기록한다.
강한 햇살로 땀이 옷에 배어들 만큼 무더운 날씨다. 그 열기는 종종 내 판단력마저 흔들리게 한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저 말은 진실일까, 정치적 수사일까, 집권을 위해 그냥 하는 말일까. 햇빛의 착란 속에서 때로는 의심과 희망의 경계는 종종 흐릿해진다.
쉼이 없는 말을 타이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을 이따금 들여다보려 한다.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어디선가 불안도 함께 묻어나는 듯해서다. 2024년 12월 3일, 국민 대부분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정치라는 말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남아 있다. 나는 묻고 싶어진다. 지금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는 그날의 상처를 온전히 마주할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진심으로 위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제도와 권력의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일까.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한다는 그의 말은 유세마다 되풀이된다. 처음엔 의심하며 받아적었지만, 자꾸 듣다 보니 묘하게 울림이 오기도 했다. 정치인의 말은 늘 거짓과 진실 사이 어디쯤 있기 마련이기에 기자로서 나는 그것이 정치적 수사인지 따져야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길 바라고도 있었다.
나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후보의 연설을 여러 번 봐왔다. 그때는 싸움닭 같았다. 발언은 직설적이었고, 논리는 거침없었다. 마치 무사가 검을 휘두르듯 말을 던졌고,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어떤가. 여전히 단호하고 결기 있는 말투지만, 그 안은 다듬어졌다. 조심스레 단어를 고르고, 감정을 억누르려는 기색이 스쳤다. 비난의 언어보다 반성이 많아졌고, 정제되고 낮은 목소리의 고백이 더 많았다.
"3년 전 대선에서 저의 부족함 때문에 패배하고 많은 분들한테 좌절감을 드렸습니다." 패배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구나 싶다. 나는 그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느꼈다. 물론 기자로서 나는 이것이 표를 얻기 위한 계산된 발언일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하지만 한 명의 소시민으로선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그 바람은 지난달 29일 내가 목격한 한 장면에서 더 짙어졌다. 서울 관악구 유세에서 이 후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는 말했다. "엄격하게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해서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그런 세상 꼭 만들어서 여러분의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칠 때, 나는 그의 말에 진심이 깃들어 있기를 소망했다.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유가족들 앞에서의 그 약속은 무게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또 생각이 스친다. 이 감정이 다시 헛된 희망으로 끝나진 않을까.
이 후보가 떠나고, 사람들은 썰물처럼 흩어졌다. 유세장 밖에서는 여전히 고단한 삶이 계속된다는 현실, 연설이 끝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에게 이 울림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런 냉소적 생각이 문득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고, 점심시간에는 퇴근 후 치킨을 시켜먹을지 고민하고, 저녁에는 아이 숙제를 봐주며 하루를 마감할 보통 사람들. 유세장에서의 감동과 다짐은 그들의 일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유세를 마치고 노트북을 덮는 순간, 손가락에는 수많은 연설을 기록한 피로가 묻어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말 속에 담긴 통합과 균형의 메시지, 위기 극복의 의지가 선거용 언어가 아닌 진심이기를, 분열된 이 땅에 다시 희망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냉소와 희망이 뒤섞인 데서, 나는 내 눈과 귀로 목격한 순간들이 진실이 됐으면 한다. 마크맨으로서의 냉정함보다 소시민의 열망이 더 크게 울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초여름의 유세장에서 울려 퍼진 그 연설이, 언젠가 책임으로 증명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