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비사㊲] 마약 운반 한인, 지지부진 재판에 결국 사망


헤로인 운반책 혐의로 이집트서 검거 구속
'사형→파기환송→사형'…대법원 상고 결정
세균 감염으로 기일 한 달 전 결국 사망해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86년 7월 헤로인 운반책 혐의로 이집트에서 구속돼 사형과 재심을 거듭했던 한국인 김 모 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국인 선원 김 모 씨가 1986년 7월 헤로인 31㎏을 파키스탄에서 이집트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현지 마약단속반에 붙잡힌 그는 헤로인 1㎏ 당 운반료 1000달러를 받는 조건에 따라 이를 감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가 운반한 헤로인은 1400만 달러로 이집트에서 발생한 헤로인 밀수 사건 중 역대 두 번째 규모였다. 결국 김 씨는 구속됐고 1988년 3월 16일 수에즈 지방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주카이로 총영사관은 김 씨와 접촉해 보기로 했다. 김 씨는 다소 체념한 듯하면서도 2심과 3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김 씨 변호인도 "1심 사형은 예상했지만 형 확정까지 상당한 기일이 남아있다"며 판결을 뒤집어볼 만하다고 전했다.

당시 이집트는 자국민이건 외국인이건 마약범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다만 사형이 실제로 집행된 경우는 없었다. 이집트 내에서 사형이 집행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데, 국가 반역죄 등 국사범을 제외하고는 사형 집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 사건에 앞서 이집트에서는 독일인 2명이 마약을 밀수한 혐의로 체포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2심 등을 거치며 중노동 25년형으로 감형됐다. 김 씨 역시 이러한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높았다.

외무부(외교부) 내에서는 마약 사범 김 씨에 대한 영사 조력 제공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제한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외교부

외무부(외교부) 내에서는 '마약 사범' 김 씨에 대한 영사 조력 제공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약 밀수로 사형이 내려진 상황에서 영사 보호권 행사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김 씨가 범죄 전반을 기획한 건 아니었던 만큼, 제한적 지원은 가능하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에 따라 주카이로 총영사관은 이집트 당국에 '김 씨는 기계적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상참작을 요청했다. 동시에 김 씨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협조하기로 했다.

주카이로 총영사관 측은 세계법률가 회의 참석차 방한했던 현지 대법원 판사를 접촉했다. 그는 "직무상 직접 추천은 어렵다"면서도 "방한 기간 한국 정부의 호의에 답하는 뜻"이라며 변호사 A를 소개해 줬다.

김 씨는 A 변호사를 공식 선임했고, 1심 선고 약 한 달 만인 1988년 4월 19일 항소 절차가 개시됐다. 하지만 당시 상급심 사건이 폭주하면서 김 씨의 선고일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국 김 씨의 재판은 해를 넘긴 1989년 4월 2일 열리게 됐다.

2심 재판부는 수 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변호인의 청구를 받아들인다"며 "1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다"고 밝혔다. 김 씨가 사형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주카이로 총영사관은 김 씨의 건강 호전을 위해 김 씨를 외부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김 씨는 1991년 7월 20일 최종 선고일 약 한 달을 앞두고 결국 사망했다. /외교부

그로부터 약 9개월 뒤인 1990년 1월 17일 수에즈 지방법원에서 재심이 열렸다. 김 씨는 변호사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고, 재판부는 증인 출석 등 추가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수에즈 지방법원은 1991년 5월 17일 김 씨에 대해 재차 사형을 선고했다. 김 씨에게 남은 길은 대법원에 상고하는 일이었다.

김 씨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고자 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약 5년 넘는 수감 생활로 건강이 크게 악화한 것이었다. 특히 세균 감염으로 인한 복통이 심각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김 씨는 극심한 설사를 시작으로 시력과 청력 감퇴까지 겪었다.

이에 주카이로 총영사관 측은 김 씨를 외부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이집트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다행히 김 씨는 외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상고 기일도 1991년 8월 15일로 비교적 이르게 잡혔다.

그러나 김 씨는 1991년 7월 20일, 최종 선고일 약 한 달을 앞두고 저혈압으로 사망하게 됐다. 김 씨는 이따금 건강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김 씨의 유해는 1991년 7월 29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김 씨의 유품으로는 오메가 손목시계 18K 두 점과 몇 푼의 이집트 파운드였다.

js8814@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