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관측되면서 정부가 두 번째 대대행 체제를 앞두게 됐다. 헌정사 최초의 권한대행 부총리 체제로 회귀하는 초현실적 형국인 셈이다.
이로 인해 한 권한대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내세웠던 국정 안정 기조는 허울뿐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에 권한대행으로서 수행한 직무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명분 쌓기'에 그쳤다는 비판도 불가피해 보인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내달 초 공직 사퇴 후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최근 한 권한대행은 주변 인사들에게 "정치권 출마 요구를 피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에 대한 결심이 섰다는 관측이다.
한 권한대행의 참모진도 속속 사의를 표명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한 권한대행의 핵심 참모인 손영택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김수혜 공보실장 등 다른 참모들도 곧 사의를 표명한다고 한다.
한 권한대행은 오는 29~30일 계획된 일정을 소화한 뒤 출마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먼저 한 권한대행은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권한대행이 지명할 수 없는 내용의 헌법재판소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이어 30일에는 당일 방한하는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을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 권한대행의 출마 시점은 내달 1일이나 2일에 확정될 공산이 크다. 같은 달 3일부터 6일까지 연휴인 만큼 주목도를 고려하면 그렇다.
한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위해 직을 내려놓는다면 정부는 권한대행 부총리 체제로 다시 역행하게 된다. 앞서 정부는 국회의 한 권한대행 탄핵으로 전례 없는 '최상목 대대행' 체제에 따라 대내외적 국정 혼란을 경험했다.
한 권한대행으로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이 있었던 터라, 당시의 국정 공백 책임을 국회에 돌릴 만하다. 다만 두 번째 대대행 체제와 관련한 책임은 오롯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에 대선 출마의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그동안 한 권한대행은 조기 대선 전까지 국정 안정에 매진하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또 국무위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에겐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출마를 이유로 관련 리스크를 후임자들에게 떠넘기면서 궁색한 꼴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한 권한대행은 지난달 24일 직무 복귀 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저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을 위해 가장 시급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숙고했다"며 "안정된 국정 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통상전쟁에 저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 "다음 정부가 차질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직자들에겐 "우리에게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이라는 중대한 소임이 있다"며 "맡은 바 역할에 책임 있게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14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이후 불거진 '대선 추대론' 속에서도 "그간의 통상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네트워크 등을 십분 활용해 국무위원들과 함께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한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묘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 14~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으면서 15~16일 광주와 울산을 번갈아 찾는 민생 행보를 보였다.
20일 공개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TF)와 인터뷰에서는 대선 출마와 관련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군불 때기를 멈추지 않았고, 22일엔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자신의 군번을 대는 안보 행보를 연출했다. 24일 국회 시정연설 뒤에는 대선 출마를 묻는 질의에 "고생 많으셨다"며 출마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한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가 수순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권 주자들은 이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7일 "심판을 하고 계신 분이 끊임없이 선수로 뛰기 위해 기회를 노린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국민이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은 한 권한대행과의 단일화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가 일제히 긍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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