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여의도=김세정·서다빈 기자]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에게 '민주당'은 인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가 거세던 1987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4년 17대 총선 서울 동작갑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낸 전 대표는 당내 핵심 직책을 두루 거쳤고,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몸담은 그곳(더불어민주당)을 떠나 새미래민주당으로 향했다. 당이 이재명 대표 중심의 1인 체제로 굳어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창당 60주년 기념사업 위원장을 맡아서 민주당 역사를 정리했어요. 민주당은 김대중의 역사와 함께하는 곳입니다. 청년 김대중이 정당 생활을 시작했던 1955년을 시작으로 보죠. 항상 비주류를 인정해 오던 곳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다양성과 민주성을 알고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이재명 외에 누구도 존재해선 안 되잖아요. 가짜입니다. 뿌리 깊은 전통 민주당이 복원돼야 합니다."
<더팩트>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새미래민주당 당사를 찾아 전 대표와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尹 구속취소는 민주당 조급함 때문"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취소와 석방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가한 전 대표는 그 책임이 이 대표와 민주당, 그리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조급하게 사법리스크에 쫓겨 핸들링했고 또 수사기관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며 서로 충돌했다"며 "결과적으로 참사로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짚었다.
그는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경쟁하다 최종적으로 공수처로 정리됐는데 막상 공수처가 내란에 대해서는 수사권이 없었다는 게 문제 됐다. 수사 역량도 빈약해 검찰이나 경찰을 따라가지 못해 시행착오와 오류도 있었지 않나"라며 "민주당 의원들의 공개적인 수사지휘에 의해 공수처장이 휘둘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는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 대표는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결정에 대해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정치권이 토를 달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즉시항고라는 제도를 통해 법원의 인신구속 판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게 유신헌법 때 생겼다는 것 아닌가.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잔재로서 남아있는 것"이라며 "최초 적용받은 사람이 윤석열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러운 면이 있지만 구속취소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을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민주, 탄핵을 조자룡 헌 칼 쓰듯…李 매불쇼 발언은 허깨비"
원내대표 출신이기도 한 전 대표는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원내 전략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다. 잇따른 탄핵안 기각에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 추진에 있어서도 부담을 느끼는 민주당의 현 상황을 겨냥해 '자업자득'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당연히 심 총장이 윤석열을 풀어줬다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퇴를 요구하는 정치적 공세까지는 잘못했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다만 사법시스템이 혼란한 상태에서 중앙지검장까지 탄핵한 마당에 검찰총장까지 한다는 건 국민들에게 썩 좋아 보이지 않을 겁니다. 탄핵을 조자룡 헌 칼처럼 휘둘러온 게 자업자득이 된 거죠. (원내 전략이) 아주 잘못 됐어요. 지금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내가 야당 원내대표 할 때 저런 파트너를 맞이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전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 비명계가 검찰과 짰다'는 이재명 대표의 최근 매불쇼 발언에 대해 "실언이자 허깨비 같은 생각"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당시 공수처를 만들고 검수완박을 해놓은 상황이어서 검찰과는 민주당 어느 의원도 다 앙숙같은 상황이었다. (내통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이 대표가 얼마나 증오와 적개심의 정치를 하는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공든 탑을 한방에 무너뜨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에서 이 대표에게 '비명'도 못 지르고 '횡사' 당한 비명계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며 "비정상적 상태가 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에) 앙금이 여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비명계가 오픈 프라이머리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기 지지자들에게 '비명계는 나를 감옥에 보내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려고 했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재명만 아니면 대선 120% 협력"
전 대표는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야권 단일화 문제에 대해 "이 대표를 제외한 어떤 후보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표는 패배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최약체 후보인 윤석열에게 0.73%차로 지지 않았나"라며 "져서는 안 될 후보에게 져서 나라가 지금 이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에서 이낙연 상임고문과 당의 역할론에 대해 전 대표는 "현재 경쟁력 조사에서 이 대표 다음으로 야권에서 (이 상임고문의) 경쟁력이 높다"며 "새미래민주당이 현재 의석은 없지만 이 상임고문을 품고 있는 정당으로서 충분히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지난 총선에서 만들어진 새미래민주당은 최근 창당 1주년을 맞이했다. "기적과도 같다"며 당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전 대표는 "수차례의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나름의 역할과 지분을 형성해 대선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지난 1년간 새민주당이 비전 제시보다는 이 대표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 대표는 "개딸(민주당 강성 지지층)이나 친명들이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희는 '이재명과 윤석열의 동반 청산'이 시대정신이라고 얘기해 왔다"며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국민의힘보다 통렬하게 하다보니까 친명계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인데 우리는 윤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비판을 해오고 있다"라고 답했다.
◆"개헌 없이는 정국 안정도 없다"
끝으로 전 대표는 개헌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대선보다도 개헌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비상 거국내각을 만들어 임기단축 개헌을 하고 윤 대통령이 물러나는 게 그나마 국가에 기여할 일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윤 대통령이 87년 체제를 마무리한다면 그간의 실정을 만회할 수 있으니까요. 권력분산형 개헌이 안 된 상태에서 대선을 치른다면 내란의 종식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내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50일 이내도 개헌은 가능해요. 이 대표가 끝까지 반대한다면 다음 대선은 호헌세력과 개헌세력과의 한판 대결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 대표는 "정치는 생물이지만 현재로서는 이 대표와의 협력 가능성은 가장 낮다"며 "새미래민주당은 개헌 세력을 중심으로 정국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