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오르면서 1년 이상 계속된 의정 갈등은 전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더라도 장기화된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만약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차기 정부에 매우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기게 된 형국이다.
20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2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된 의정갈등은 지금까지 답보 상태다.
당시 발표 이후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며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국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 운영에 큰 역할을 담당하던 전공의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재학 중인 의대생들은 집단 휴학계를 내며 동참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으며 정책 추진 의지를 확고히 했다. 정확히 1년 전인 2024년 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을 설명하며 "의료 현장의 주역인 전공의와 미래 의료의 주역인 의대생들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의사는 군인, 경찰과 같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더라도, 집단적인 진료 거부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며 복귀를 촉구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금지하고 업무개시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한편 의대 집단 휴학을 불허하도록 하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양 측을 비롯해 정치권을 포함한 대화 시도가 없지는 않았으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고, 결국 사태는 장기화 국면을 맞았다.
특히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후 탄핵 심판 및 형사 재판을 받게 되면서 모든 대화가 중단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현장의 상황은 1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는 가운데 갈등 해소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으로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출근율은 8.7%로 집계됐다. 1만3531명 중 1175명만 근무 중으로, 10명 중 1명도 출근하지 않는 셈이다.
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수련병원에서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76명(56.1%)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했고, 이 5176명 중 3023명(58.4%)는 의원급 기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가 전문의 자격을 포기한 채 일반의 신분으로 동네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재취업한 인원 외에 4046명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의대도 상황은 그대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휴학생 1만8343명 중 1495명(8.2%)만이 복학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학생들의 휴학이 길어질수록 현장에서 교육의 질 저하 우려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 혹은 국회 차원에서 갈등 해소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요원하다. 윤 대통령 탄핵과 내란죄를 두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민 여론도 반으로 쪼개졌다. 이 사안이 다른 모든 이슈를 흡수하면서 의정 갈등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 모습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 각하 또는 기각 결정을 내려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더라도 수습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1년 넘게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고, 의료개혁 명분을 강조하며 강경 기조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포고령에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여지만 남겼다.
탄핵이 인용돼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해도 빠른 시일 안에 갈등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최근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의정 갈등에 대한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상황이 된다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김선민 의원은 "필수의료 의사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의사를 감소시키고 있는 형국"이라며 "정부는 하루빨리 의료계와 협의해 1년이란 긴 의료대란을 수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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