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벼르고 있다.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까지 탄핵한다면 국정 혼란이 가중된다는 우려로 말을 아껴왔지만 쌍특검법 공포가 점차 불투명해지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한 권한대행을 둘러싼 민주당의 스텝이 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24일 비상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고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지금까지는 혹여라도 한 권한대행이 국정안정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방향으로 제 역할을 하길 기대했는데 오늘 아침의 발언을 보니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생각은 전혀 없고 내란 세력 비호할 생각만 하는 것 같다"며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당초 민주당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공세 대신 한 권한대행에 협조를 요청해 왔다. 한 권한대행을 압박하면서 국정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대통령 공백이 생긴 상태에서 총리까지 탄핵한다면 국민에게 혼란을 부추길 수 있고, 탄핵을 남발하는 이미지로 비칠 우려 역시 상당했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이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내란 상설특검 추천을 미루자 민주당은 탄핵으로 무게추를 기울였다.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검후보추천위원회에 지체 없이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해야 하지만 이날로 열흘이 지났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은 이날까지 상설특검 후보를 추천하라고 요구했지만 총리실은 끝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쌍특검법(내란 일반특검·김건희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거나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 임명에 대해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점도 탄핵 추진의 배경 중 하나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5시 30분 탄핵안을 의안과에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26일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된 후 한 권한대행이 이들을 임명할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상설특검 추천 의뢰와 김건희 특검법, 내란 특검법에 대한 즉시 공포, 헌법재판관을 지체 없이 임명하라는 세 가지 요구 사안이 있는데 26일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가 이뤄졌을 때 즉시 임명하는 절차까지 지켜보기로 했다"며 "국민들 마음을 헤아려 26일에 요구한 사안들이 이행되는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겠다"라고 밝혔다.
서둘러 탄핵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주기보단 숨 고르기를 택한 셈인데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전체적 전략을 잘못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여야가 타이밍 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전략을 설정해 차근차근 목적을 이뤄야 하는데 민주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상황을 몰고 있다"며 "(거부권 행사 시한인) 내년 1월 1일까지 결론을 내달라고 한 뒤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면 괜찮았을 텐데 지금 명분을 잃어버렸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처럼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라고 밝힌 이상 헌법재판관 임명도 거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짙다. 이 경우엔 26일 탄핵안이 발의될 전망인데 여론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도 "이 대표가 전에는 탄핵을 안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말을 바꾼 형국이 됐다"며 "국정 안정에 방점이 아닌 자신들의 시간표에 따라 탄핵을 하겠다는 걸로 비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31일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끔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은 패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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