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6개 쟁점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거부권 정국'의 첫발을 뗐다. 이로써 한 권한대행은 다음 단계인 '김건희 여사·내란 일반특검법' 거부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야당은 한 권한대행이 이마저도 내친다면 곧장 탄핵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박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대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세 차례 거부했던 김 여사 특검법에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란 특검법까지 거부하기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 권한대행은 19일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농업 4법 개정안(양곡관리법, 농수산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과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는 △기존에 정부가 거부했던 법안이 보완되지 않은 점 △규정이 오히려 가중된 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한 권한대행을 탄핵으로 압박했던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한 권한대행의 거부 직후 국회에서 "윤석열과 내란 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라"고 경고했다. 다만 한 권한대행의 탄핵 추진 여부에 대해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 한 권한대행이 '레드라인'을 넘진 않았다는 의미다.
한 권한대행이 마주할 두 번째 거부권 정국이자 민주당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사안은 김 여사 특검법과 내란 특검법이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넘어온 해당 법안의 거부 여부를 오는 3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정부 기조는 변함없다'는 한 권한대행의 입장을 고려하면 김 여사 특검법은 수용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김 여사 특검법은 지난해 12월 28일, 올해 9월 19일, 지난달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김 여사 특검법이 정부로 이송될 때마다 위헌성을 지적하며 재의요구를 건의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모두 재가했다. 한 권한대행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네 번째 특검법은 수사 대상만 15개로 직전 특검법에 비해 수위가 높다. 이에 따라 한 권한대행도 기존 정부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을 '대통령의 헌법 권한'이라고 주장한 점도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뉴시스에 따르면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에게 보장된 헌법상의 권한"이라며 "그 권한을 이어받은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는 것이 탄핵 사유가 된다는 건 어느 헌법 규정과 어느 법률의 규정에 의해 그런 판단을 내리는지 잘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내란 특검법은 한 권한대행으로서도 거부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이 만만치 않은 데다, 한 권한대행도 비상계엄이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어서다. 또 내란 특검법은 앞선 6개 법안과 김 여사 특검법처럼 정부의 기존 입장이라는 게 없다. 한 권한대행이 특검의 수사 대상으로 적시돼 있고, 현재 내란 사태의 피의자라는 사실도 간과하기 어렵다.
애초 한 권한대행이 여야 소통 창구로 기대했던 '국정안정협의체'는 거부권 여파에 동력을 잃은 모양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오는 20일 여당과 '국정안정 고위당정협의회'를 가질 예정이다. 특검법이 공식 안건으로 오르진 않지만 향후 계획 등과 관련한 당정 간 논의가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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