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수민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사퇴하면서 '한동훈 체제'가 들어선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수순에 접어들었다. 국민의힘 출범 이후 6번째 비대위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권력구조 개편이 이뤄지면서 계파 갈등은 최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탄핵이 아닌 이 나라에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탄핵에 찬성했던 한 대표에게 가해진 당내 '사퇴 압박'에 따른 것이다.
한 대표는 앞서 탄핵안 가결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부터 이어진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도 "저는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자신의 사퇴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친윤계인 김재원·김민전·인요한 최고위원뿐 아니라 친한(친한동훈)계 장동혁·진종오 최고위원까지 전원 사의를 표하면서 지도부가 붕괴돼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애초 친한계를 중심으로 당헌 96조4항을 근거로 한 대표가 차기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다고 보고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법적인 권한 여부와 별개로 더 이상 버티는 게 한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의미도 도움도 안 된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물러나면서 국민의힘은 비대위 구성을 시작으로 당 정비에 집중할 전망이다. 당헌 96조에 명시된 비대위 설치 요건인 '선출직 최고위원 4인 이상의 사퇴로 궐위'일 때 전국위원회 의장은 비대위 설치를 위한 후속절차를 지체 없이 진행해야 한다. 이에 전국위 의장은 전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절차를 지체 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각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당 내부 의원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여당 중진 의원들도 당내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비대위를 조속히 구성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 대표 사퇴 이후 권한대행을 맡은 권성동 원내대표가 계속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중진 회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오늘 나온 이야기로는 외부인은 부정적"이라며 "내부에서 찾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의원도 "당의 안전과 화합, 그리고 쇄신을 위해서 잘 이끌 수 있는 경험 많은 당내 인사가 적격이 아닌가 생각했다"면서도 '당내 인사'가 원외 인지 원내인지 묻는 질의엔 "당내 인사라는 표현으로 말하겠다"고만 했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비대위를 중심으로 "당이 이제는 결집해야 한다"는 여권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당분간 분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고수했던 친윤계와 중진의원 등 당내 주류세력이 탄핵을 찬성했던 의원들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등 탄핵 가결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대권 행보가 뚜렷해질수록 당내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 대표는 사퇴하면서도 대선 출마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한 대표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국회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이 저를 지키려고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를 태운 차량은 또다시 정차했고, 한 대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우리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며 뚜렷하고 일관된 정치관을 드러냈다. 다만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의 탄핵 가결 국면에서 여권 일각으로부터 쏟아진 '배신자', '독단적인 의사결정' 등 부정적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지층을 확대할 것인지는 그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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