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평양 상공 무인기 침투 사건'이 계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12·3 사태의 주동자인 김 전 장관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위해 고의적으로 남북 긴장 수위를 높인 것이다.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되지만 국방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도 '김용현 지시설'에 대해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무인기 사건을 북한의 자작극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무인기 사건을 조사한 바 없다. 이를 고려하면 통일부의 설명에는 '북한의 자작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도 내포된 셈이다. 여러모로 정부가 사건의 진위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방부는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무인기를 평양으로 보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기존 입장과 동일하게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군이 지켜야 할 기밀·보안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말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연합뉴스를 통해 지난 10월 무인기 사건이 김 전 장관의 지시와 여 전 사령관의 기획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전 장관의 이같은 시도는 계엄령 발동을 위한 하나의 준비 작업이라는 게 박 의원의 설명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을 직접 건의한 12·3 사태의 핵심 관계자다. 박 의원 주장대로라면 그는 이전부터 계엄을 위해 국지전까지 각오할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된다.
통일부도 같은 날 김 전 장관의 지시설에 "사실 관계가 아직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평양 무인기 사건을 이전에는 북한의 거짓말이라는 취지로 분석했는데, 지시설이 사실이라면 잘못된 분석이었던 것이냐'는 질의에 "무인기가 자작극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며 "북한은 내부적 필요에 의해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정부는 무인기 사건을 조사했다고 밝힌 바 없다. 지난 10월 18일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를 합동참모본부가 왜 조사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북한이 밝혀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시 북한의 이상하리만큼 이례적이었던 반응이 재조명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11일 외무성 '긴급 성명'을 통해 한국이 그달 3일, 9일, 10일 무인기를 평양 중심부 상공에 침투시켜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북한 고위 인사 또는 기관 명의로 입장을 밝히는 '담화'보다 높은 급이다.
이후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12일부터 하루꼴로 대남 비난 담화를 쏟아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무인기 사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방·안전 협의회를 소집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15일에는 노동신문에 '멸적의 의지'가 언급됐는데, 이는 통일부에서도 북한의 특이 반응으로 판단한 대목이다. 통일부는 이에 "북한의 태도가 여러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 특이했던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북한은 28일 '적 무인기 비행 계획 자리길'이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이는 비행경로까지 공개했다. 당시 북한은 추락한 무인기를 분해해 비행경로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추락한 무인기 사진도 그 과정에서 공개됐다.
정부가 무인기 사건에 대한 '김용현 지시설'에 함묵하는 사이 민주당은 김 전 장관을 일반이적죄 혐의로 고발했다.
민주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 전 장관은 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오물풍선 살포 지점에 대한 원점타격을 논의했다는 정황이 보도됐다"며 "이는 남북 교전 및 국지전으로 확전될 우려가 있는 행위로 의도적인 군사 충돌을 유발해 계엄 상황을 만들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장관이 12·3 사태 전 합참의장에게 북한 오물풍선의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합참은 김 전 장관의 오물풍선 원점 타격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어 "지난 10월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보낸 것이 우리 군이며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는 제보가 보도됐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에게 군사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한 일반이적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의 선포와 계엄군을 동원한 내란 행위 당시에 군사동맹국인 미국에도 통보하지 않았을뿐더러 무인기 파견과 원점타격의 모의에서도 어떤 종류의 사전 공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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