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비사⑱] 北, '외국인 게릴라 양성'…중국·소련이 후원


북한의 대(對) 외국 정부 음모 계획 전모
외국인 게릴라 양성소 설치...파견 교육도
대통령 암살 시도, 쿠데타 등 실제 발생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71년 외무부(외교부) 정보문화국이 생산한 북한의 대(對) 외국 정부 음모 계획 전모라는 제목의 문서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71년 외무부(외교부) 정보문화국은 '북한의 대(對) 외국 정부 음모 계획 전모'라는 제목의 문서를 생산했다. 당시 외무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외국인 게릴라 양성을 위해 훈련소를 설치하고 전문 교관을 해외에 파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북한의 게릴라 양성은 관련 국가 내에서 쿠데타, 대통령 암살 시도 등으로 번졌다. 외무부는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양성 배경에 중국과 소련의 후원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훈련 기관은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산하 '민족 보위성 정찰국'으로 훈련 대상은 모두 27개국이었다. 차드, 시리아, 통일아랍공화국(이집트·시리아), 이란, 기니, 알제리, 앙골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리비아, 케냐, 콩고, 예멘, 우간다 등 아중동 지역 국가가 14개국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과테말라, 우루과이, 페루, 칠레, 베네수엘라, 멕시코, 볼리비아, 콜롬비아,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 9개국과 월맹, 베트콩, 캄보디아, 라오스 등 아시아 지역 4개국이었다.

게릴라 훈련 기관은 평양 교외에 3곳, 영변 1곳, 상원 1곳, 해주 1곳, 남포 2곳, 원산 2곳 등 모두 10곳이었다. 훈련은 북한군 장교와 하사관이 전담하는 방식으로 단기 6개월, 장기 1년 또는 1년 6개월 코스로 이뤄졌다. 훈련 내용은 정치학, 무전학, 지형학, 도시와 농촌별 게릴라 전법, 사격, 탱크, 레이더, 항공기, 공공건물, 기간산업 시설 폭파 등으로 다채로웠다. 이밖에 태권도, 유도, 권투, 검술, 침투, 야영, 습격, 매복, 행군, 정찰, 고성능 폭약 사용법, 약물 살해법 등이 교육됐다.

북한 교관이 직접 파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북한의 형제국 쿠바에서는 '쿠바-북한 단결위원회'가 구성돼 1966년 이래 북한의 게릴라 전문가 6명이 파견됐다. 이들은 월 5000달러에서 2만달러의 지원을 받아 500명의 쿠바 게릴라 요원을 양성했다. 또 차드에서는 1969년 반란군 수장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는 북한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은 요원 중 한 명인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외무부는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훈련 목적을 △혁명 수출을 통한 미국의 힘을 약화해 대(對) 한국 및 월남 지원 둔화 △폭력 혁명의 세계적 보편화 △아세아(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인민 혁명 역량과의 전투적 연대성 구축 등으로 분석했다.

외무부가 파악한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훈련 정보. 당시 훈련된 인원만 중남미 1300명, 아시아·아프리카 700명으로 모두 2000명이었다. /외교부 제공

북한의 이같은 외국인 게릴라 훈련은 실제 외국 정부 전복 기도 사건으로 이어졌다.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공산당 쿠데타 사건'에는 소련 유학생 31명이 관련됐는데 이들 중 일부가 평양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970년 9월 콩고 주재 북한 대사 등 3명은 간첩 행위와 파괴 공작 혐의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북한은 콩고 주재 대사관을 거점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무력에 의한 공산 적화'를 위한 게릴라 훈련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1971년 3월 15일 멕시코 연방 검찰총장은 '멕시코 혁명행동대' 일당 19명을 체포했으며 29명을 체포하기 위해 추격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1968년 12월과 1969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소련을 경유해 북한에 입국했다. 이어 평양 근교 등 북한 내 '게릴라 훈련소'에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 동안 멕시코 정부 전복을 위한 게릴라 전술, 파업, 테러 등 세 가지 과정을 훈련받았다.

이뿐 아니라 혁명행동대는 북한으로부터 공작금과 무기, 무전기 등을 지원받았고 여권도 발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루이스 에체베리아 멕시코 대통령은 혁명행동대 사건과 관련한 담화를 발표하고 북한을 규탄했으며 멕시코 주재 소련 대사대리 등 5명을 추방했다.

1971년 4월 15일 실론(스리랑카) 정부는 콜롬보 주재 북한 대사를 소환해 추방 명령을 내렸다. 또 북한 대사관의 고용원 2명을 체포했다. 당시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실론 수상을 암살하려 했던 반군 2명이 북한으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은 데다, 북한의 지령에 따른 '공산화 요원'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후 실론 정부는 북한 대사관에 현지 경찰로 구성된 경계망을 펼쳤고 대사관 직원들의 외부 출입을 금지했다.

외무부는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훈련의 배후에 중국과 소련의 후원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공산당 쿠데타 사건에는 중국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인도네시아와 중국 간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다.

북한 자체적으로는 국방비를 크게 늘려 외국인 게릴라 훈련에 막대한 경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북한의 1970년 국방비는 총예산의 31%에 해당하는 7억500만달러였다. 이듬해인 1971년에도 북한은 전체 예산의 30%를 상회하는 8억5000만달러를 국방비에 투입했다.

북한의 외국인 게릴라 양성 소식이 곳곳에 전해지자 몇몇 국가는 북한에 대한 경계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실론 수상 암살 기도 사건'에 충격을 받고 북한 총영사관과 직원 숙소, 심지어 문화 회관에 경찰을 배치해 이들의 활동을 감시했다. 레바논 정부 역시 북한 통상대표부의 추방을 경고했고, 버마(미얀마)에서는 언론에 연재됐던 김일성 광고를 중단시켰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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