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개원식 이어 또 불참…野 "국회 무시" 규탄


여당 내에서도 비판...한동훈 "아쉽다"
국회의장 "국민 권리 침해...강한 유감" 직격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 아래)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 참석해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데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께서 크게 실망하셨을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무시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규탄했으며,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국민께 송구하다",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내년 예산이 적기에 집행되어 국민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확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국회에 협조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의 불참에 따라 연설문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총리가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대독한 건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통령이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연설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대통령이 매년 시정연설에 나섰으며 윤 대통령도 지난해까지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한 바 있다.

우 의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에 앞서 "시정연설은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예산편성 기조와 주요 정책 방향을 국민께 직접 보고하고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국정의 중요한 과정"이라며 "대통령께서 직접 시정연설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에 대한 존중"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국민께 보고할 책무가 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 의장은 "대통령께서는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불참의 이유도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계속 국회를 경원시해서는 안 된다"며 "국회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국민이 위임한 국정운영의 책임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무겁게 직시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여당 의원들이 고성으로 항의하자 우 의장은 "어느 당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국회라는 국민의 대표 기관,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라며 "입법부 수장으로서 행정부 수반에게 서로 협력을 잘해 나가기 위한 촉구"라고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윤 대통령의 불참에 대해 여당에서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에 대해 "아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앞서 대통령실에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며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직접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한계 배현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국민들께 송구하다. 대통령께서는 오늘 시정연설에 나오셔야 했다"며 "지난 국회 개원식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를 '패싱'라는 이 모습이 대다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듭, 가면 안 되는 길만 골라 선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 판단과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무력한 당의 모습이 오늘도 국민과 당원들 속을 날카롭게 긁어낸다"고 덧붙였다.

야권은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윤종군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거부권 남발로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더니 이젠 대놓고 국민과 싸우겠다며 구중궁궐에 틀어박힌 대통령의 고집불통에 기가 막힌다"고 맹비난했다.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입법기관이자 예산 심사 권한을 가진 국회에 보고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당연하다"며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 책임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민주화 이후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면서 "한마디로 오만, 불통, 무책임만 있는 불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으로 국회와의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주당 등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대한 대대적인 삭감을 예고한 상태다. 다음달 2일인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경제'와 '민생'을 강조하며 △맞춤형 약자복지 △경제활력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안전한 사회와 글로벌 중추 외교 등 4대 분야를 중점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개혁에 대해서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국회를 향해서는 "정부는 흔들림 없는 건전 재정 기조 아래,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치열하게 고민해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했다"면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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