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승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대선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박빙으로 진행되면서다. 특히 국내 정치권과 산업계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정치, 경제, 안보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팩트>는 미 대선 결과를 앞두고 후보별 공약에 따른 국내 정치·경제·외교·안보에 미칠 파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 곳곳이 들썩인다. 즉흥적이고 거친 언사를 즐기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저 막말로 치부하긴 어려운 노릇이다. 이러한 트럼프의 입에 칩스법이 올랐다. 그는 칩스법을 '정말 나쁘다'고 깎아내리며 당선만 된다면 이를 뒤집을 기세다.
칩스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해당한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아직 보조금을 받지 못한 기업들이 있다는 것. 트럼프가 당선 뒤 칩스법을 무효화한다면 기업들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트럼프의 발언은 대선 막판 전 표심 확보를 위한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칩스법은 2022년 8월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정됐다. 미국 반도체 산업과 첨단 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법으로 정식 명칭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지원 내용이 담겨 있다. 예산 규모는 5년간 총 527억 달러로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 △연구개발 지원금 110억 달러 △군수·인프라 20억 달러 △칩 공급망 구축 5억 달러 △인력 양성 2억 달러 등이다.
법안이 통과된 후 600곳이 넘는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보조금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텍사스(440억 달러)와 인디애나(38억7000만 달러)에 투자를 결정했다. 두 기업에 책정된 보조금은 각각 64억 달러, 4억5000만 달러다. 보조금은 한 번에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 개발의 진척 정도에 달려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같은 보조금을 '낭비'라고 비판하며 차라리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달 25일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그 반도체 거래는 정말 나쁘다"라며 "(과거에는 관세를 부과해 반도체 기업에) 단 10센트도 주지 않아도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하다. 그들은 우리 사업 95%를 훔쳤고 그게 대만(TSMC)에 있다"며 "그 이유는 우리의 멍청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에서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TSMC를 예로 들었지만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도 반도체법 범위에 해당한다.
트럼프 특유의 즉흥적인 발언으로 풀이될 수 있지만 그의 주요 공약이 '보편적 관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간과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 이후 칩스법 자체가 사문화되지 않더라도 보조금 규모가 달라진다면 투자 기업으로서는 막심한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트럼프가 '속도 조절'을 통해 기업에 새로운 거래를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대규모 투자를 추진한 국내 기업으로서는 계획 전체를 백지화할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발간한 '2024 미국 대선 :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을 통해 "대선주자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이념, 가치, 안보를 통상정책과 연결하면서 칩스법 등 보조금 지급에 있어서 복합적이고 다양한 미국 내 통상 관련 조치로 정책수단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법안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애초 칩스법은 트럼프가 속해 있는 공화당도 동의한 초당적 법안이다.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의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해 주는 법안도 지난해 12월 상원에 이어 지난 9월 하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입안 시기부터 최근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드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방향인데 칩스법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며 "보조금 주면서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오히려 미국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미국이 획기적으로 많은 것을 감안하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건 아니다"라며 "물론 해리스와 보조금에 있어서 입장차가 있지만 (칩스법 발언 자체는) 참모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선거 막바지를 고려한 선거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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