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의대 정원 유예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이 재점화했다. 한 대표가 제안한 2026 의대 증원 유예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하면서다. 6개월이 넘는 의료 공백 속에서 의정(의사-정부)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집권 여당 대표가 한계를 보이면서, 그의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30일 만찬 회동이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당정이 모여 밥 먹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민생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며 "당 지도부와의 식사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표면적으로 만찬 연기 배경을 '민생'이라고 꼽았지만, 여권 내에서는 한 대표의 의정 갈등 해결책을 둘러싼 입장차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25일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게 비공식적으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은 유예하면 어떻겠냐"고 제시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유예하면 불확실성에 따라서 입시 현장에서도 굉장히 혼란이 클 것"이라며 한 대표 안을 거부했다.
대통령실이 대안을 거절하자, 한 대표는 곧바로 윤 대통령 공개 압박을 택했다. 지난 27일 한 대표는 본인의 SNS를 통해 "의료개혁의 본질과 동력을 유지하되, 국민 건강이란 절대적 가치에 대해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해결책이 필요하다"라며 "증원을 1년간 유예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더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28일에도 한 대표 측은 '대통령실에 다른 대책이 있다면 직접 제시해달라'는 취지로 역제안했다. 제안 수용 불가 방침에도 의정갈등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실에 공을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행보에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집권 여당 대표의 리더십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해당 사안을 민생으로 보고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의료계 내 한 대표 '키맨' 역할 기대감에도 대통령실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그의 입지만 좁아진 꼴이 됐다.
한 범야권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본인의 역량이 모자란 점을 들킨 것밖에 안 된다"라며 "한 대표가 여권 내부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대안을 낸 후에 전공의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시금석인데, 현재 용산에서 거부 당한 상황이라 쉽지 않다. 당내 입지도 계속 약해지고, 당 안팎으로 고립된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여권 내에서는 한 대표가 답보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못 박은 윤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마땅한 출구가 없는 상황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의료 공백이 6개월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는 완고한 입장인데, 여당 대표로서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다만 정부가 지금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둘 사이의 갈등이 점화돼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이라 시간이 좀 필요하다"라고 봤다.
취임 후 한 대표의 실점만 더해지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로 꼽힌다. 한 대표는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안에 대한 당내 반발 여론을 잠재워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한 대표가 의정 갈등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서툴다 못해 아마추어"라며 "적어도 의료 대란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한 대표는 공동운명체인데, 이대로 여권이 몰락하면 한 대표도 살아남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