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당 부활해야 하나요?…원외 청년 정치인 이야기 들어보니


"정치에 돈·인맥 중요한데…청년에게 부족한 자본"
"지구당, '소통'면에선 긍정…제도적 보완도 필요"

정은혜(왼쪽)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손수조 정책연구원 리더스 대표는 대표적인 청년정치인이다. 두 사람은 80년대생으로 정당에서 잔뼈가 굵은 원외 정치인으로 청년들이 중앙정치로 발돋움하는데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선출직 당선을 위해선 누구보다 돈, 조직, 인지도가 중요한데 청년에겐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국회=조채원 기자] 20대 국회 때 비례대표를 승계 받아 7개월 동안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던 정은혜 전 의원. 지난 총선에서는 경기 부천정에 출마했다. 선거 준비를 위해 사무실을 차리고 현수막을 거는 등 적잖은 돈을 썼다. 그러나 부천갑·정이 부천갑으로 합구되면서 네 개 지역구가 세 개로 줄었다. 당에선 '현역 의원들끼리 경선' 방침이 정해졌다. 정 씨 포함 열명 남짓 예비후보들이 출마를 위해 들였던 돈과 시간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박근혜 키즈'로 알려진 손수조 정책연구원 리더스 대표도 지난 총선에서 경기 동두천시에서 출마했다. 19, 20대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차례 낙선했다. 3년쯤 전 동두천으로 이사 온 그는 관변단체 활동, 봉사활동 등을 꾸준히 하며 새 지역구를 다졌다. 그러나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해당 지역구에서 경선 없이 현역 의원을 단수 공천했다. 손 대표는 컷오프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 재도전까진 4년…연구원·장례지도사로 생업

이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을 훌쩍 넘은 1980년대생 '청년 정치인'이란 것, 그리고 정치인으로 방송 출연 외 수익 활동을 위해 다른 일들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전 의원은 국민대학교의 한 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출근 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직업이 여럿인 자칭 '엔잡러'다. 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의회의 연구, 연수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책연구를 진행하거나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입찰에도 참여해 생업을 이어간다. 장례지도사와 유튜브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장례지도사로는 6년차로 한 업체의 어엿한 '책임 총괄'이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사상구에 출마했던 손수조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2016년 3월 29일 부산 사상구 부산화훼공판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더팩트 DB

다음 총선까지는 또 4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차기를 엿보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철학·이념·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최고위원직을 맡은 이유도 당의 승리를 우선했기 때문"이라며 "제 선거 출마는 나중 일이더라도 3년 후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1인 가구, 저출생 경력단절 여성, 지방자치 입법강화 문제에 대한 정책을 연구한다"며 "정치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지금 일도 큰 맥락에선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 "돈·인맥 중요한 정치…청년에겐 부족한 자본"

​둘은 청년이자 원외 정치인으로서의 고충은 '돈'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손 대표는 "원외에서 정치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어려운데, 어느 직장 한 군데에 매여선 오롯이 정치 활동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라 프리랜서나 개인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치는 인맥, 돈, 전략이 필요한 일종의 종합예술인데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청년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자본이나 인맥이 있다면 오롯이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다.

손 대표는 처음 정치에 입문했던 시절 2012년 일화를 소개했다. 그에겐 모아 둔 돈도 적었고 친인척 중 정치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조차 몰랐다, 인터넷에서 (공천)심사위원 메일 주소 찾아 이메일을 쓴다거나 당사에 무작정 찾아가 문 앞에서 무작정 대기한다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후보 등록 때 신고한 재산은 4억 6000여만 원. 대부분 그의 부모님 것이었다. 일반 직장인이 월급을 받아 모을 수 있는 돈인 3000만 원으로 정치를 해보겠다는 목표로 선거를 치렀다. 당시 여러 보도에 따르면 손 대표는 목표치를 약간 초과한 3442만 원을 썼다. 그는 "그 돈으로 선거를 치르려다 보니 포스터를 흑백으로 찍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국회의원 선거 한 번 치르는 데 1억은 거뜬히 든다"고 설명했다.

정 전 의원도 "선출직 당선을 위해서는 돈, 조직, 인지도가 중요한데 청년에겐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30대 여성이 지역구 경선에서 이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고, 대한민국 역사상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 선출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로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 (정기회) 제7차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짧은 임기에도 다수 법안을 대표발의 하는 등 성실한 의정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팩트 DB

◆ "내가 겪어 본 지구당, '소통'면에서도 부활 찬성"

현재 정치자금법은 '오세훈법'으로 지구당을 폐지한 2004년부터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원외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모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2018년 노회찬 의원 사망사건을 계기로 상시 후원회를 둘 수 있는 국회의원과 그렇지 않은 정치 신인·원외 인사 간 정치자금 형평성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22대 국회에 들어와 떠오른 문제 중 하나도 '지구당 부활'이다. 사실상 지역구에선 국회의원 역할을 하는 원외 지역(당협)위원장에게는 공정성 문제를 개선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20년 전, 지구당을 찾아가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정 전 의원은 지구당 부활에 긍정적이다. 그는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없어졌지만 당시 지구당은 지역 주민에게 문턱이 낮고 손쉽게 민원을 넣을 수 있다는 소통 창구 역할로 순기능했다"고 평가했다.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 해보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구심점이자 정치 신인을 배출하는 역할도 했다.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가 보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측면도 있었다. 정 씨는 "현역 의원이 의정보고서를 내듯 원외위원장도 자신의 지역구 활동을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표심이 한쪽으로 쏠린 호남·영남 지역의 경우 현역 의원들과 상대 당 원외위원장이 지역을 위해 노력한 업적을 비교할 수 있게 되면 유권자들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투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초체력은 길러야…도전의 싹 자르지만 말았으면"

지구당 부활 외 ​원외 정치인, 특히 청년들의 정치참여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점은 없을까. '돈 없으면 정치 못 한다'지만 이들은 정치인의 길을 스스로 택한 만큼 '무일푼으로 할 수는 없다'는 데엔 공감한다.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체력은 스스로 갖추되 기회의 평등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단 얘기다. 손 대표는 "청년 정치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사회에 헌신하고자 할 때 넘어야 하는 재정적 장벽이 너무 높은 측면은 있다, 예를 들어 당장 1억 넘는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청년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예비후보 등록 후 이용할 수 있는 '선거자금 대출 제도'를 만든다던지 공천 받은 청년 정치인에게는 당에서 선거자금 대출 이자를 지원해주는 방안 등이 있다"고 제안했다.

정 전 의원은 "정당이 연예 기획사 연습생처럼 체계적인 정치인 훈련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출직을 희망하는 '원외 정치인'의 범주는 당내 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인사 뿐만이 아니란 의미에서다. 그는 "자기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종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많은 '원외 정치인'들이 당직자, 보좌진 등으로 일하며 선출직 꿈을 키우고 있다"며 "이들을 잘 교육시켜 관리하면 역량을 충분히 갖춘 인재들을 선거 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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