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전기자동차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터지면 여야는 부랴부랴 법안 발의에 나서고 있으나 이마저도 뒷전으로 밀리는 국회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차량 140여 대가 전소되거나 그을렸고, 단지 수도 공급시설이 파손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지난 6일에는 충남 금산군 한 주차타워에 주차한 전기차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났다.
국토교통부와 소방청 등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22년에는 43건, 지난해에는 72건으로 치솟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등록된 전기차는 60만6610대로, 2017년(2만5108대)보다 무려 24배 급증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라 전기차에서 불이 나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지상으로 모두 옮겨야 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전기차 화재 특성상 삽시간에 불이 번지고 소화하는 것도 어려워 큰 화재사건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다.
이번 화재사건 전부터 전기차의 보급이 증가하면서 관련 화재사고도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전기차는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 온도가 급상승하는 이른바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해 이동식 소화수조 등 특수 시설의 필요성에 제기돼 왔다. 또 지하 주차장에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기에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요구도 꾸준히 제기된다.
21대 국회 때 관련 법안이 발의됐었다. 지난해 4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현행법은 화재 발생 시 소방에 필요한 시설의 설치 등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 등 옥내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방화셔터, 소화수조 등 소방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8월 조오섭 당시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주차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주차장에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소방용수시설, 소화수조 등의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차의 진입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당시에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가 충전 중에 화재를 일으켜 큰 피해를 발생했고, 신속한 초기 대응을 도모하기 위해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논의되지 못하고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거의 비슷한 내용의 법안들이 국회에 접수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주차장 전기차 충전기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주차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마찬가지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소방시설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건을 언급하면서 "전기차 보급 속도에 정확하게 따르지 못하는 제도와 규제 속도라는 지적이 있다.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의 안전이나 국민들의 우려를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당이 앞장서서 챙기겠다"고 했다.
민주당도 지난 6일 △전기차 화재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소방시설 설치, 주차장 안전기준에 관한 규정 마련 △전기차 충전시설 및 지정주차구역 지상 설치 유도 △지상 주차장이 없는 신축아파트에 대해서는 소방차의 진입이 용이하도록 관련 법 개정 △전기차 전용 주차 구역 내 화재 감시 폐쇄회로(CC)TV와 소화덮개 등의 비치 의무화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뒷북 입법' 움직임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장마철 집중호우에 따른 수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자 국회는 뒤늦게 수해 예방 관련 법안들을 처리했다. 서울·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에서야 여야는 전세 사기 재발방치책 입법에 나기도 했다.
물론 번갯불에 콩 굽듯 충분한 숙의나 심사 없이 급하게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사회에 혼란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가 터지면 '반짝 발의'에 그치고 후속 논의에 착수하지 않는 국회의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