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대통령 배우자를 공식적으로 보좌하는 제2부속실이 다시 부활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실 슬림화 공약에 따라 제2부속실 폐지를 공언했다. 허위 이력으로 논란이 된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 약속은 윤 대통령 공약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계속된 여사발 리스크로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2개월 만에 입장을 선회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방탄용 벙커'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메시지, 일정 등을 담당할 제2부속실 설치를 공식화했다. 시행령인 대통령실 직제를 개정한 뒤 인선 작업을 거쳐 이달 중으로 설치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제2부속실장에는 장순칠 시민사회2비서관이 물망에 올랐다. 장 비서관은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윤석열 대선 캠프 원년 멤버다. 당내에서는 차분히 일하는 관료형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결단에는 여사 리스크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 채널로 김 여사 일정을 투명하게 관리해 소모적인 논란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고, 법 외적인 지위를 관행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제2부속실 폐지를 약속했다. 공약대로 제2부속실은 폐지됐고, 김 여사 일정과 메시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제1부속실 내 '배우자 팀'에서 맡아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KBS 대담에서도 "제2부속실이 있었더라도 이런 일(명품백 수수 의혹)을 예방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제2부속실 운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여사발 논란으로 민심 이반과 야당의 공세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제2부속실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보여주기식이라도 좋으니, 제2부속실은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 6월 23일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야 하는 만큼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를 강력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22대 총선 참패, 저조한 대통령 지지율 등 집권 3년 차 국정 운영 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 카드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尹의 결단...임기 3년차, 제2부속실 부활에 野 '만시지탄' 지적도
당장 민주당 등 범야권에서는 '방탄용 벙커'에 불과하다는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다. 한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그간 공적 통제를 받기 싫어서 제2부속실을 만들지 않았던 것 아닌가"라며 "영부인의 검찰리스크를 덜어내고, 구설을 피해 가려는 차원에서 떠밀려 제2부속실을 만드는 것이다. 진정성이 전혀 없다"라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제2부속실은 명품백 수수 의혹, 주가 조작 의혹 등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관리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후로도 김 여사가 활동하려면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한데, 만시지탄(晚時之歎)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나아가 제2부속실 설치에도 민심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김수민 평론가는 "제2부속실 설치가 영부인 공식 활동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영부인 공식 활동에 대해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라며 "제2부속실 설치는 법적 의무도 아니지만 정작 법적으로 임명해야 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이 안 되고 있는 점, 특혜 수사 논란, 특검에 대한 높은 찬성율을 고려하면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치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행법상 보좌해야 하는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 규정이 모호해 제2부속실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경호 및 예우 대상으로만 규정돼 있다. 이로 인해 과거 제2부속실은 폐지와 부활과 굴곡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박정희 정부에 설치된 제2부속실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정윤회 문건'으로 비선 개입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체됐다. 제2부속실 소속 직원이던 윤전추·이영선 전 행정관이 국정농단 핵심인 최순실 씨를 보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제2부속실이 운영됐지만, 대통령 배우자 지위를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여전히 전무하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도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가 됐다"라며 "정권마다 (대통령 배우자를 향한) 너무나도 많은 억측에 시달리는 데다, 불법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배우자의 행보 경계가 모호해 정쟁의 소지가 있고, 늘 정쟁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정확하게 영부인의 활동 범위, 예산, 인력 지원 등의 근거들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2부속실 설치하면 배우자 리스크 해결될까...해외 사례는?
실제로 미국의 경우 대통령 배우자 등 가족 보좌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 만약 대통령이 배우자가 없을 경우에는 이러한 보조 및 서비스는 대통령이 지정하는 가족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이 근거를 토대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맏딸인 이방카 트럼프는 백악관 내 영부인실이 위치한 '이스트 윙'에서 거주하며,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도맡았다.
반면 대통령 배우자의 관행적 역할 제도화에 신중론도 나온다. 지난 5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프랑스 대통령의 배우자의 법적 지위' 연구보고서에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을 다시 설치한다고 해도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라며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를 법규로 규정하면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배우자에게 공직자의 책임과 의무를 부여해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