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지난달 27일 일본의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표기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등재에 앞서 지난달 25일 여야는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및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권고 이행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윤석열 정부 대일굴종외교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도 먹구름이 잔뜩 꼈다. 여야는 '방송 4법'과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여야 간 합의되지 않은 쟁점 법안 처리를 둘러싼 힘겨루기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여당은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장 기록이 경신되기도 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여당의 반대와 야당의 강행 처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 아니라 본회의 전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다툼과 발언 수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여야의 당내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의 직을 두고 계파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민주당 내에서는 연임에 도전하는 이재명 전 대표의 강성 팬덤인 '개딸'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와, 전당대회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간 날 선 발언이 오갔다.
◆사도광산 전시물 '강제성 표현' 협의...이틀 만에 선 그은 외교부
-사도광산에 대한 외교부 입장이 번복됐다던데?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우리 정부가 동의하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지. 정부는 일본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하고, 조선인 강제노동 관련 전시실을 설치하는 조치에 따라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해. 하지만 전시실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전시물 내용을 살펴보면 '강제성 표현'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야.
-지난달 30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도 관련된 질의가 나왔어. 강제성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해 외교부가 향후 일본 측에 이를 요구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지. 이에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내용을 살펴보고 보완할 부분이나 추가로 일본과 협의할 사안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답했어. 강제성 표현이 실제로 부족하다면 이를 일본 측에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읽혔지.
-하지만 이틀 만인 지난 1일 외교부 당국자는 이 대변인의 답변 취지가 "전시물의 상태 개선을 위해 협의한다는 의미이며 전시 내용에 대한 협의를 의미한 것이 아님"이라고 밝혔어. 기존에 전시된 전시물의 '상태'를 협의한다는 것이지 '내용'의 변화를 논의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결국 강제성 표현이 부족한 지금의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
-실제로 사도광산 전시물에는 강제성이 직접 표현된 내용이 없다고?
-응. 일본은 사도광산에서 2km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관련 전시를 설치, 지난달 28일부터 일반 방문객에게 공개하고 있어. 이곳은 과거 사도광산 관리사무소로 사용됐던 곳이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라는 평가야.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일본이 전향적인 조처를 한 게 아닌가 싶었어. 하지만 전시실에는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은 묘하게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와.
-일례로 전시실에는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국민징용령이 한반도에 도입돼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 1000명 이상의 한국인 노동자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국가총동원법 등 관련 법령은 일본이 식민 지배의 합법성을 주장할 때 사용되는 논리야. 국내법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거지. 물론 전시실에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노동자 모집·알선에 관여하고, 위험한 작업은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 노동자에 비해 더 많이 종사했다는 점 등의 사료가 전시돼 있지만 '강제성'이 직접 표현되지는 않았거든.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벌써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는 건 아닌지 우려돼. '군함도 약속'도 9년째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으니까. 일본은 해마다 한국인을 포함한 사도광산 노동자 추모식을 하겠다고도 했는데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
◆밀려난 친윤계 정점식, '위드후니'로 순항하는 '한동훈호(號)'
-'친윤'(친윤석열)계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이 지난 1일 끝내 사의를 표명했다지.
-맞아. 정 전 의장이 당 지도부로부터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을 받은 지 하루 만이야. 당내에서는 '버티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어. 실제로 한동훈 지도부가 들어선 후 정 전 의장은 사석에서 1년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거든. 하지만 신임 지도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그의 거취로 내홍이 부각되자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 갑작스러운 사퇴 압박이 당황스럽고 불쾌하기도 했겠지. 지난 1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오늘은 발언하지 않겠다"라며 말을 아꼈고.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같은 친윤계 최고위원인 인요한 의원과 서로 끌어안는 모습도 보였어. 파워게임에 밀린 친윤계의 동병상련 모습이랄까.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정 전 의장이 불편한 기색을 계속 보였다고 하던데.
-겉은 웃고 있었지만, 말엔 뼈가 있었어. 정 전 의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당헌상 당대표에게 정책위의장에 대한 면직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어. 서범수 사무총장을 비롯해 한동훈 지도부는 한 대표에게 정책위의장 임면권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퇴를 압박했거든.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서, 당의 기구가 아니라 원내 기구라는 점을 강조한 거지. 당의 화합을 위해 본인 스스로 물러나는 걸 택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거라는 해석이 나와. 실제로 당내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된다는 강경론도 있었다고 해. 정 전 의장은 "당헌과 배치되는 주장에 따라 물러나선 안 된다는 말씀들이 많았다"라면서도 "당의 분열을 막겠다"고 했어.
-정 전 의장의 사퇴에 당원들의 반발도 한몫했다던데.
-정 전 의장으로서는 한동훈 지도부의 전방위적인 사퇴 강요에 더해 당원들의 반발도 압박으로 다가왔을 거야. 9만2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한 대표 팬클럽인 '위드후니'에는 정 전 의장을 비토하는 댓글이 수 천개 넘게 올라왔어. '한 대표를 위해서 정점식 의원 사퇴는 당연한 행동이다', '정점식은 한 대표와 당원들에게 모욕을 줬다' 등의 내용이야. 한 대표 지지자들의 '좌표 찍기'도 계속됐지. 정 전 의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댓글 테러가 계속되면서, 페이스북은 비공개 처리된 상태야. 정 전 의장 의원실에도 항의 전화가 많이 왔나 보더라고. 결국 한동훈 지도부의 정책위의장으로 4선의 김상훈 의원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원외 인사인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이 내정됐어. 당원 지지를 등에 업은 '한동훈호(號)'가 당분간은 순항할 것 같네.
◆'올림픽인가?'…연이어 세워진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지구촌 대축제, 2024 파리올림픽이 한창 진행되고 있어. 태극전사들의 낭보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데, 국회에서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기록이 다시 쓰이고 있잖아.
-맞아.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2일 필리버스터 최장 시간 기록을 경신했어. 그는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상정되자 첫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 다음 날 오전까지 15시간 50분 동안 반대 토론을 했어. 날을 새며 무려 16시간 가까이 연설한 거야. 2일 오전 6시44분쯤 단상에 내려온 박 의원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격려하더라고.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의 최장 기록(13시간 12분)은 나흘 만에 깨졌어. 지난달 29일 '방송 4법'의 본회의 통과를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했었어. 필리버스터를 마친 뒤 연락이 닿은 김 의원은 최장 기록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해. 그는 "주어진 책무를 다해 국민들께 법안의 반대 의사를 진정성 있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 진정성에 시간이 포함된 것 같다"고 설명했어.
-장시간 서서 연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 기록을 떠나 발언자의 의지와 끈기는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신진환 기자, 조채원 기자, 김세정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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